궁궐에 봄이 만개했다. 창덕궁 후원의 연못인 관람지(觀纜池) 생강나무가 15일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고 낙선재 매화는 막 개화를 시작했다. 별빛 아래 경복궁 전각의 속살을 걸어보는 '경복궁 별빛야행' 상반기 프로그램도 20일 문을 열었다. 지난해 경복궁·창덕궁 등 4대 궁과 종묘를 찾은 관람객은 1061만명. 처음으로 연간 궁궐 관람객 1000만을 돌파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밤의 경복궁과 낮의 창덕궁을 일행 따라 걸어봤다. 관람 동선에서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뷰(view) 포인트, 최고의 사진을 건질 수 있는 '바로 여기'를 소개한다.
◇경복궁의 밤
어둠이 내려앉은 궁궐 위로 별빛이 떨어졌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조명이 정전(正殿)인 근정전을 비추고, 왕이 걷던 어도(御道)엔 우리 일행뿐이다. 궁궐 부엌인 소주방에 앉아 궁중 나인의 시중을 들으며 임금이 드시던 12첩 반상 음식을 먹는다.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을 지나면 첫 번째 뷰 포인트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담이라는 자경전 꽃담이다. 대비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글자와 매화, 모란, 국화 등을 정교하게 담장에 새겨 넣었다.
후궁 영역인 집경당과 함화당은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별빛야행 관람객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집경당과 함화당은 세 칸의 마루로 이어져 있는데 이 마루에서 바라보는 향원정 야경이 일품이다. 청사초롱 들고 향원정 앞으로 옮겼다. 연못 위에서 아늑하게 빛을 발하는 육각형 정자에 넋을 잃는다. 문화해설사는 "곧 건물을 해체 보수하기 때문에 앞으로 3~4년은 향원정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고종의 서재인 집옥재는 외관부터 이색적이다. 여느 전각과 달리 처마는 직선이고 양옆 벽을 벽돌로 쌓았다. 청나라풍 건물인 이곳에선 천장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어보자. 고종이 책을 읽었다는 자리에 앉아 책장을 넘기는 호사도 누려보시길.
집옥재를 나와 산책로 따라 걸으면 야행의 하이라이트가 나타난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누각으로 손꼽히는 경회루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연못, 잔잔한 물결 위에 비치는 전각과 나무가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신발 벗고 2층에 올라 한 바퀴 돌면서 서울 야경을 바라본다. 한쪽에선 구중궁궐 전각이 겹겹이 보이고 반대쪽 전망엔 높은 빌딩이 있다.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은 올해 별빛야행 기간을 작년보다 3배 확대해 45일간 진행한다. 상반기는 4월 14일까지(매주 화·토요일 제외) 하루 2회(회당 60명) 계속된다. 인터넷 예매를 시작하자마자 1분도 안 돼 마감됐다. 궁중문화축전(4월 28일~5월 7일) 기간에도 경복궁의 밤을 즐길 수 있다.
◇창덕궁의 낮
봄꽃을 즐기기엔 창덕궁만 한 곳이 없다. 이문갑 창덕궁 관리소장은 "이번 주말이면 낙선재 매화가 절반가량 피고, 29일부터 열흘간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대조전 화계의 앵두나무, 희정당의 산철쭉은 4월 내내 볼 수 있다.
창덕궁 답사는 후원과 전각 프로그램이 따로 진행된다. 먼저 후원부터. 봄바람 살랑거리는 왕의 정원은 눈부시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도 자주 등장했다는 연못인 부용지와 주합루는 한 컷에 담아야 예쁘다.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은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나무까지 화면에 넣을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창덕궁은 궁궐 중에서도 자연과 가장 조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해설사는 "전각을 돌 때는 딱 세 컷만 담아도 좋다"고 추천했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을 서쪽 행각에서 바라본 측면, 왕이 나랏일 보던 선정전에 얹은 청기와, 낙선재 정문인 장락문(長樂門) 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