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보는데… 띠리릭~ 카톡… 당신의 폰매너는 몇점입니까

    입력 : 2017.03.21 03:13 | 수정 : 2017.03.21 07:26

    [공공의 적 '스몸비' 1300만명] [2] 공공장소의 꼴불견

    캄캄한 영화관서 셀카 찍고, 전화 받고… '폰딧불이' 공해
    다른 사람들은 몇점? 물었더니 10점 만점에 평균 3.9점 응답

    - 2시간 공연 불빛 21번·찰칵 19번
    "몰입에 방해" 항의 수십건씩 쇄도
    배우가 공연중에 벨소리 울리면 '전화 받으셔!' 즉흥 대사 읊기도
    최근엔 손목 위에서 반짝반짝 스마트워치가 신종 '민폐' 도구

    배우 조재현(52)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 '블랙버드'를 공연하다가 문자 그대로 "피가 거꾸로 솟을 뻔했다"고 했다. 성폭행 가해자인 레이(조재현)와 피해자 우나(채수빈) 두 명만 출연하는 2인극에서 한창 감정 몰입에 열중하는데, 갑자기 객석에서 경쾌한 트로트 벨소리가 들린 것이다. 스마트폰 주인인 중년 여성 관객은 전화를 끄는 대신 작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어, 너 끝났어? 엄마는 아직 안 끝났어." 조씨는 "남녀 주인공이 반전을 맞는 조용하고 아주 심각한 장면에 딱 벨이 울렸다"며 "너무 화가 났지만 꾹꾹 참으면서 연기를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왼쪽부터)이순재, 박해미, 조재현.
    (왼쪽부터)이순재, 박해미, 조재현.
    조씨는 "연극 시작 전에 관객들에게 '여러분, 극장에서 전화기 안 끄는 것은 대중 목욕탕에서 큰일을 보는 것과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본인은 곤란한 게 금방 해결되지만, 관객과 배우 등 주변 사람들은 너무 극심한 피해를 본다는 뜻"이라고 했다.

    대학로 소극장을 자주 찾는다는 배우 이순재(82)씨는 "공연 중에 스마트폰을 켜서 사진 찍고 불빛을 비추는 사람을 많이 본다"며 "그럴 때마다 '연기하는 후배들이 꽤 신경 쓰일 텐데 실수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고 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의 폐해는 공연장에서도 심각하다. 관객 수준이 과거에 비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공연 도중 스마트폰 벨소리나 진동 소리가 자주 울린다. 공연 중에 버젓이 통화를 하거나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 소리를 내며 '인증샷'을 찍는 관객들도 상당수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스마트폰 화면 불빛으로 배우나 다른 관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관객들을 뜻하는 '폰딧불이(스마트폰+반딧불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본지와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만 15~60세 스마트폰 사용자 1000명을 상대로 '영화관이나 공연장 등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스마트폰 예절 점수는 몇 점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더니 평균 6.35점(10점 만점)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반면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 예절 점수'에 대해서는 거의 절반 수준인 평균 3.9점이 나왔다.

    "선생님~ 전화 받으셔!"

    지난해 12월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뮤지컬 '새로워진 넌센스2' 공연을 하던 배우 박해미(53)씨가 객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원래 대본에는 없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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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훈 기자
    원장 수녀역을 맡은 박씨가 독창을 막 시작하려는 장면에서 스마트폰 벨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주인은 머쓱해하며 전원을 껐다. 박씨는 "공연 열 번 중 한 번 정도는 스마트폰 벨이나 진동이 울리기 때문에 아예 대본에 없는 즉흥 대사를 미리 준비해놓는다"고 했다.

    스마트폰 공해(公害)는 배우나 관객이 공연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해서 공연의 질(質)을 떨어뜨린다. 지난 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멘델스존 서거 170주년 기념 음악회'. 공연 시작 전에 '휴대전화 전원을 반드시 꺼주시고 로비에서만 사용해주세요. 공연장 내 사진 촬영은 불가능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1000여명의 관객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한 50대 여성이 스마트폰을 켜고 뭔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관객이 "비싼 돈 들여 공연 즐기러 와놓고 스마트폰은 왜 보는 거냐"고 혼잣말을 하자, 이 여성은 "지휘자가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본 건데…"라며 가방에 폰을 넣었다.

    본지 기자가 이날 무대에서 약 50m 떨어진 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더니, 2시간가량 공연 동안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3차례, 카메라 셔터 소리가 19차례 들렸고, 스마트폰 불빛은 21차례 보였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관객들은 스마트폰 사용이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생각해 공공 예절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매번 공연이 끝나면 '스마트폰 때문에 공연에 방해가 됐다'는 항의가 수십 건씩 쏟아진다"고 했다.

    영화관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영화관을 찾은 관객 130여명 중 3분의 1은 전원이 켜진 스마트폰을 팔걸이에 놓아두고 있었다. '23아이덴티티'가 상영되고 약 30분이 지나자 영화관 곳곳에서 '폰딧불이(스마트폰+반딧불이)'가 나타났다.

    한 30대 남성은 "여보세요"라며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10분 뒤 자리로 돌아오면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켰다. 영화 시작 직전부터 '찰칵' 소리를 내며 셀카를 찍던 20대 커플은 엔딩크레디트가 채 올라가기도 전에 또다시 셀카를 찍었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음인 '카톡' 소리도 여러 차례 들렸다. 이날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 스마트폰 진동 소리가 16차례, 카메라 셔터 소리가 23차례 들렸다.

    스마트워치도 공연·영화계에서 새로운 민폐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직장인 서모(29)씨는 지난달 영화관을 찾았다가 "앞에서 셋째 줄, 맨 오른쪽 남자분. 제발 스마트워치 좀 끄세요!"라며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나왔다. 앞자리 남성이 움직일 때마다 손목에서 스마트워치 불빛이 번쩍거렸기 때문이다. 서씨는 "스마트폰 불빛에다 이제 스마트워치 불빛까지 겹치니 내가 영화를 본 건지 불빛쇼를 본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CJ CGV관계자는 "스마트워치는 신체에 착용하는 것이어서 끄지 않는 경우가 많고, 스마트폰에 비해 화면이 작아 정작 자신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스마트워치 때문에 영화 관람하는 데 방해받았다는 항의가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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