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미들급' 37승 무패… "난 링 위의 짐승"

    입력 : 2017.03.20 03:05

    [골로프킨, 제이콥스에 판정승… 미들급 세계 통합 챔피언 방어]

    - 한국 외조부 둔 카자흐 한국계
    순박한 얼굴이지만 'KO 머신'… 타이슨 이후 가장 강력한 핵주먹
    대전료는 턱없이 낮은 28억원

    - 도전실패 제이콥스도 인간 승리
    6년전 뼈암 대수술후 링 복귀

    그의 별명은 '베이비 페이스(baby face)'다. 35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순박한 얼굴이고,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말투도 공손하다. 사람들은 그에 대해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를 해도 되겠다"고 한다. 단, 이 모습은 1라운드 공이 울리기 전까지다. 글러브를 끼는 순간 그는 살인적인 'KO머신'으로 돌변한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골로프킨은 '핵주먹=험악한 인상'이라는 마이크 타이슨의 공식을 깬 선수"라고 소개한다. 19일 경기까지 통산 37전 37승. 그중 33번을 KO로 장식한 무패의 철권 겐나디 골로프킨(35·카자흐스탄)이다.

    골로프킨은 19일 WBA(세계복싱협회)·WBC(세계복싱평의회)·IBO(국제복싱기구) 미들급 통합 챔피언 방어전(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도전자 대니얼 제이콥스(30·미국)에게 심판 전원 일치 3대0 판정승(115-112, 115-112, 114-113 )을 거두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그의 연속 KO승 기록은 '23'에서 멈췄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 제이콥스의 도전을 물리치며 자신이 왜 '타이슨 이후 가장 강력한 주먹'으로 통하는지 보여줬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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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 어퍼컷과 철벽 가드 - 복싱 미들급 통합 챔피언 겐나디 골로프킨(오른쪽)이 19일 타이틀 방어전(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상대 대니얼 제이콥스에게 어퍼컷을 꽂는 장면. ‘핵주먹’이라고 불리는 골로프킨의 강펀치를 막기 위해 제이콥스는 가드를 단단히 올렸다. 골로프킨의 바지에 쓰여 있는‘GGG’는 풀네임‘겐나디 겐나데비치 골로프킨’의 이니셜이다. 해외 팬들은 골로프킨을‘트리플G’라고 부른다. /AP연합뉴스
    이 매치는 '미친 미들급 경기(Middleweight Madness)'라고 불렸다. 최근 들어 가장 화끈한 미들급 경기라는 의미다. 20년 전만 해도 미들급은 열기가 가장 뜨거운 체급이었다. 주먹은 무겁지만 발이 느린 헤비급, 발이 빠르고 화려하지만 호쾌한 한 방이 없는 밴텀·웰터급과 달리 '파워풀하면서도 화려한 싸움'이 미들급에서 펼쳐졌다. 마빈 해글러, 슈거 레이 레너드, 로베르토 듀란, 토머스 헌스 등 미들급의 수퍼 스타들이 전설을 써내려갔지만, 그 이후엔 사실상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골로프킨은 이런 미들급에서 레전드로 등극한 복서다. 그는 3라운드 이내 KO승이 18번에 달할 만큼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살을 내주고 뼈를 끊는' 전술로 관객을 전율시키기도 한다. 일부러 가드를 내리고 한 대 얻어맞은 다음 강력한 카운터 펀치 한 방으로 상대를 눕힌다. 국내 팬들은 "한 방이면 골로 보낸다고 해서 이름도 골로프킨이냐"는 농담을 한다.

    숫자로 보는 골로프킨
    도전자 제이콥스는 이 경기 이전까지 33전 32승(29KO) 1패의 놀라운 주먹을 자랑하고 있었다. 2011년 뼈암이라 불리는 골육종을 앓아 "척추 종양으로 다시는 걸을 수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제이콥스는 티타늄을 뼈에 박는 대수술과 25번의 방사선 치료를 받는 등 사투를 벌인 끝에 2년여 만에 링에 복귀했다.

    '인간 승리' 스토리로 유명해진 제이콥스는 이날 골로프킨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했지만, 골로프킨은 4라운드에 한 차례 다운을 뺏는 등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타이틀을 방어해냈다. 채찍 같은 잽으로 제이콥스의 가드를 흔들었고, 몇 차례 제이콥스의 훅이 얼굴에 꽂혀도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챔피언의 여유를 보였다.

    골로프킨은 외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연해주로 이주한 한국인으로, 어머니가 하프 코리안이다. 소련 붕괴로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 군에 입대했던 두 형은 모두 전투 중 세상을 떠났다. 8세였던 골로프킨은 꼭 성공해서 광부였던 러시아인 아버지와 화학공장에서 일하던 어머니를 책임지겠다고 다짐했고, 11세 때 복싱을 시작해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어린 시절 나에겐 복싱이 컴퓨터 게임과 같은 놀이였다"고 했다.

    골로프킨은 이날 대전료로 약 250만달러(약 28억원)를 받을 예정이다. 대전료가 1000억원이 넘는 플로이드 메이웨더(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해외 복싱 전문가들은 "골로프킨이 카자흐스탄이 아니라 미국인이었다면 1000억원을 넘어섰을 것"이라고 한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챔피언 벨트를 주렁주렁 맨 골로프킨은 다시 아이 미소로 돌아갔다. 그러곤 웃으며 "난 공이 울리면 짐승이 된다. 다음 도전자도 모두 환영한다"고 했다. 골로프킨의 무패 행진에 세계 복싱이 달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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