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지식인도 정치·학문 '양다리' 후회"

    입력 : 2017.03.20 03:03

    [밀과 토크빌 정치 참여 분석 '위대한 정치' 펴낸 서병훈 교수]

    정치사상서 발표로 이름 떨친 뒤 자기 생각 실천 위해 정치 투신… 의원·장관 지냈지만 빛 못 봐
    '그 시간에 공부나 할 걸' 반성

    "연구·저술이 지식인의 본령"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대학교수들이 늘어나면서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중진 정치학자인 서병훈(62·사진) 숭실대 교수가 최근 펴낸 '위대한 정치'(책세상)는 지식인의 정치 참여라는 해묵은 난문(難問)을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1806~1873)과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의 사례를 통해 고찰한다. 밀과 토크빌은 '자유론'과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불후의 저작을 집필해 당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서양정치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년배로 교유했던 두 사람은 정치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
    /이명원 기자
    저명한 학자였던 아버지 제임스 밀을 도와 정치평론지 편집장을 맡았던 밀은 30대 후반부터 '논리학체계' '정치경제학원리' '자유론'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영국 지성계를 주도했다. 무관(武官) 집안에서 태어나 법률 공직에 진출한 토크빌은 26세 때 교도(矯導) 행정의 개혁 방안을 모색한다며 장기 미국 출장에 올랐다. 친구 보몽과 함께 9개월 넘게 미국 곳곳을 살펴본 뒤 30세에 펴낸 '미국의 민주주의'는 신생국 미국에 관한 최고 분석서로 주목받으며 그를 일약 유럽의 대표 지성으로 만들었다. 밀은 이 책에 감명받아 서평을 썼고 두 사람 사이에 10년 가까이 만남과 서신 교환이 이어졌다. 서병훈 교수는 "말과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지식인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우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밀은 인간을 발전시키고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좋은 정치'를 주창했다. 토크빌은 프랑스혁명 이후 혼란에 빠져 있던 프랑스에 안정과 공공성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정치'를 설파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그들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고민하던 두 사람은 자기 생각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밀은 59세에 하원의원에 당선돼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지만 재선에 실패했다. 토크빌은 34세에 하원의원이 돼 13년간 재임하며 외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그의 주장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왼쪽)과 알렉시 드 토크빌.
    19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왼쪽)과 알렉시 드 토크빌. 당시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부상하던 자유·평등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고민한 두 사람은 길이 남는 명저를 낸 뒤 자신의 주장을 실천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정치인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책세상
    만년에 밀과 토크빌은 정치 참여를 후회했다. 밀은 다른 선거구로 옮겨 정치를 계속하라는 권유를 받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내 생각을 풀어서 들려주는 피곤한 일에 비하면 조용하게 연구에 정진하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토크빌은 '회상록'에서 "나는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꿈꾸었던 그 멋진 정치적 역할을 하는데 필수적인 자질을 내가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밝혔다. 서병훈 교수는 두 사람이 정치인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로 권력 의지가 약했고 대중 친화적 능력이 부족했던 점을 들었다. 서 교수는 "밀과 토크빌은 정치에 바친 시간에 공부하고 글을 썼다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거두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밀과 토크빌의 정치적 좌절은 오늘의 지식인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 서병훈 교수는 "사회가 미분화됐던 19세기에 비해 지금은 지식인이 생업을 성실히 하면서 다른 일을 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며 "지식인은 연구와 저술을 통해 봉사하는 것이 본령"이라고 말했다. '사회 참여'란 명분으로 교수가 연구·교육을 소홀히 하는 한국은 비정상이라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괜히 학문과 정치에 양다리 걸치지 말고 잘하는 것 하나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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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서병훈 교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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