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高학점 비결은 앞자리 앉고, 강의 내용 모두 받아 적는 것, 농담까지"

    입력 : 2017.03.20 03:03

    ['대한민국의 시험'을 시험대에 올리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저자 이혜정 박사]

    도덕과 예절의 공통점을 두 가지 고르시오. (중학 1년 도덕 시험)
    1.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준다
    2. 우리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준다
    3. 옳은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도록 한다
    4.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5. 양심과 관련이 있다

    "제 출신 학과의 선배 교수들로부터 '서울대 망신시켰다'며 많은 질책을 받았습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한 야당의원으로부터 제 책에 관한 견해를 질문받자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어요. 그 뒤로 서울대의 공식 입장은 '노 코멘트'였습니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펴낸 이혜정(46) 박사는 교육계의 이단아(異端兒)처럼 됐다. 그런 그녀가 그 책의 후속편으로 '대한민국의 시험'을 출간했다.

    "시험이 수업과 교육을 결정합니다. 무엇보다 오지선다형 대입수능은 초중고 교육을 인질로 잡고 있습니다. 대입수능이 안 바뀌면 교육 체제를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방해온 일본도 내년부터 공립학교 200곳에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논술형 대입자격 시험)'를 도입했습니다. 다른 형태의 시험은 다른 생각을 가진 인재를 배출할 것입니다."

    이혜정 박사는“대입 수능이 안 바뀌면 결코 교육 체제를 바꿀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혜정 박사는“대입 수능이 안 바뀌면 결코 교육 체제를 바꿀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3주 전 이 코너에서 만난 김도연 포스텍 총장도 "대입수능 문제를 직접 풀어보면서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하더군요..

    "대입수능에 맞춰져 있는 중·고교의 내신 성적 평가를 알면 더 분노가 터질 겁니다. 학기 초 어느 중학교의 첫 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학부모 중에는 전문가가 많아 자녀 시험에 이의를 많이 제기합니다. 설령 시험 문제의 답이 3번도 되고 4번도 되더라도 절대 이의를 제기하지 마세요'라고 했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것만 정답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영어 천재라도 영어 교과서만 외워야 하는 겁니다."

    그녀는 해당 중학교 1학년 기말고사의 도덕 과목 문제를 보여줬다. '도덕과 예절의 공통점을 두 가지 고르시오'라는 오지선다형 문항은 다음과 같았다.

    〈①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을 가르쳐준다 ②우리에게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준다 ③옳은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하도록 한다 ④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⑤양심과 관련이 있다〉

    ―답은 뭡니까?

    "저도 모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게 답일 겁니다. 중·고교 국어 시험의 경우 지문(地文)을 제시하고 '글쓴이의 의도는?'이라고 묻습니다. 그 글에 대해 학생의 생각이 어떤지는 묻지 않습니다. 가령 '님의 침묵'에서 작자(한용운)는 어떤 대상을 '님'으로 표현했느냐는 식이지요. 문제의 정답은 '조국(祖國)'일 겁니다. 과연 그런지 작자의 생각을 직접 알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교과서에 실리는 글의 작자는 대부분 돌아가셨습니다."

    ―제 글이 고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중간고사에서 '작자의 의도로 적절한 것은?'이라며 출제된 적이 있었습니다. 답을 틀린 학생이 어떻게 알고 제게 문의를 해왔습니다. 솔직히 저도 답을 모르겠더군요.

    "교육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을 키우는 겁니다. 우리 교육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수업에나 집중해'라며 학생의 생각을 죽입니다. 우리는 '1592년 임진왜란'을 달달 외는 게 지식이라고 여깁니다. 선진국이라면 그런 정보를 제시한 뒤 '임진왜란 같은 전쟁은 어떤 사회 변화를 갖고 왔느냐?'라고 묻습니다. 이는 다른 종류의 공부와 사고력을 요구합니다."

    ―우리 세대는 그런 암기·주입식 교육을 받고도 시대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현재의 교육 방식은 우리 시절보다 진전된 게 아닙니까?

    "과거에는 오차 없는 답을 중시하는 제조업에 기반한 산업 구조였습니다. 그런 인재가 수용되는 사회였습니다. 지금은 생성적이고 창의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사회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경험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면접시험에 대해 얘기했다.

    "대학 측은 '외모·태도·영어 실력·선행 학습을 보지 않는다. 사고력만 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딸은 옥스퍼드대 기숙사에 2박 3일간 머물며 교수 4명과 면접을 봤습니다. 면접관은 '여기 1000만개의 모래가 있다. 모래더미(heap)라고 할 수 있나? 한 개를 빼도 그런가? 계속 빼면 마지막 하나는 모래알갱이(grain)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모래더미에서 알갱이가 되나?'라고 질문했습니다. 면접관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시험은 다른 식의 교육을 요구하는 겁니다. 국내 최고라는 서울대와 비교해보십시오."

    그녀는 2학기 연속 4.0 이상 학점을 받은 서울대생들의 심층인터뷰와 설문조사를 토대로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저술했다. 고(高)학점 비결은 교수의 강의 내용을 완벽하게(농담까지) 다 받아 적는 것, 강의실 앞자리에 앉는 것, 재미없는 강의에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이들 최고 학점 학생에게 '시험 답안지를 쓸 때 네 생각이 교수님의 생각과 달라. 그래서 A+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가 않아. 하지만 교수님의 생각보다 너의 생각이 더 좋을 경우 어떻게 할래?'라고 질문했을 때, 대부분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겠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교수님과 의견이 다르면 내 생각이 틀린 것' '정답이 정해져 있는데 왜 다른 생각을 해야 하나'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가 출간된 뒤, 해당 학생들로서는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을 텐데요?

    "인터뷰 당시 학생들은 교수님 강의를 다 받아 적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세간에서는 대부분 제 책의 문제의식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생 전용 포털사이트 '스누라이프'에서 나타난 반응은 절반으로 나뉘었습니다. 감정적인 반발이 아니라 논리적인 반박이었습니다. 가령 '비판과 창의는 맨땅에서 나오나 지식 흡수가 먼저'라고 지적하는 식이었지요."

    ―그 나이 때 갖춰야 할 지식 습득은 중요합니다.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배움이 없이 생각만 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했듯이, 독서와 공부의 기반에서 비판과 창의라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요?

    "서울대 한 약학과 교수가 '대학원생들이 외워야 하는 약초 수(數)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이런 지식 습득이 기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지식의 습득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쟤들이 뭘 알아'라는 식의 프레임에 가두면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학창 시절 당신의 성적은 어땠습니까?

    "대학 학점은 3.8 정도, 저도 열심히 받아 적었지요. 교수님 강의를 좀 더 완벽하게 받아 적지 않았기에 4.0까지는 안 됐지만요."

    ―요즘 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는데,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까?

    "대학 다닐 때는 비판적 사고에 대한 생각조차 안 해봤습니다. 대학원에 올라가서 저 자신이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른다는 걸 깨닫고 좌절했습니다. 그 뒤 의식적으로 비판적인 사고력 훈련을 해왔습니다. 교수님의 강의 분석과 컨설팅을 지원해주는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가 첫 직장이었습니다. 학생들 강의도 병행하면서요."

    ―어떤 식으로 강의했습니까?

    "저는 강의 자료를 미리 웹사이트에 올려줍니다. 그런 뒤 학생들에게 수업 이틀 전까지 두 가지 질문을 올리라고 합니다. 그 질문을 갖고 진행했습니다. 좋은 질문이 생각을 키웁니다.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 답이 나오는 질문은 하지 마라. 나를 감동시킬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A+를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

    "첫 수업에 '네 생각은 어떤가?'라고 묻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그다음 날 수강자의 절반이 떠나갔습니다. 학생들은 '매끈하게 강의해주면 안 돼요. 너무 힘들어요'라고 했습니다. 학생들은 시키는 일에는 매우 능하지만 스스로 뭘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잘 카피해 좋은 학점을 받으면 되니까요. 10대 대기업의 신입직원 평균 학점이 3.7이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취업난에 치열한 경쟁이 현실이니까요.

    "그런 극심한 경쟁의 승자(勝者)조차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못 갖췄다는 게 문제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기에 필요한 인재는 과거 개발연대의 인재와는 달라야 합니다. 생성과 응용적 지식을 갖춘 인재가 안 나오면 나라가 망합니다. 조선 말 나라가 망한 것은 바깥세상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은 채 문 닫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보다 더 많이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만큼 인정을 못 받는 게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지력(知力) 하락'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15년 전 일본의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며 질타한 상황과 오버랩됩니다.

    "어떤 평가를 하느냐가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대입 수능은 오지선다형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좋은 점수를 받습니다. 기계적으로 만듭니다. 대학에 진학해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집니다. 창의적인 답안을 쓰면 낮은 학점을 받고, 교수님의 생각을 얼마나 잘 옮기느냐에 높은 점수가 나옵니다."

    ―대학에서 그렇게 평가하는 교수의 문제도 크게 보입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연구 실적으로 평가됩니다. 자신의 평가에서 중요하지 않은 학부생 강의에 공들일 이유가 없습니다. 사석에서 만나면 '어떻게 학부생까지 신경 쓰나. 창의적 학생은 피곤해. 실험실에서 사고 친다'는 말을 합니다. 대외적으로는 '비판적 사고력 함양' '창의적인 인재 양성' 목표를 안 내세우는 대학이 없습니다. 정작 평가는 교수님 강의를 잘 수용하느냐로 이뤄지고요. 목표와 평가의 미스매치(mismatch)이지요."

    ―목표는 그냥 목표로서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홍콩대 등이 3년 학기제를 4년제로 바꾸는 작업 과정(2001~ 2012년)에서 신입생들에게 '대학이 길러줘야 할 주요 역량'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졸업 때는 그런 역량이 길러졌는지 묻습니다. 졸업 후 1년, 5년에도 조사를 했습니다. 당시 제가 외부 전문가로 참여해 그 데이터를 받아 봤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어디에도 학생들에게 어떤 능력을 길러주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대선 주자들이 국가 장래를 정말 걱정한다면 '대입 수능 문제'부터 한번 풀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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