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돌고래 숲

  • 정끝별 시인·이화여대 교수

    입력 : 2017.03.20 03:02

    [정끝별의 시 읽기 一笑一老] 돌고래 숲
    /윤혜연

    돌고래 숲

    깊은 숲에 이르면 볼 수 있다 했다 은백양 뿌리에 감겨 잠든 돌고래, 나는 눈먼 사람이 되어 수풀을 헤쳤고 웅덩이 고인 물에 발목을 적셨고, 입술을 모아 휘파람 불면 살아 있는 자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자, 숲은 제 몸을 떨며 천천히 차오르고 있었다 이마 깨끗한 돌고래 다가와 나를 부르고 흘러가는 방향에 홀린 채 검푸른 물속으로, 막힌 핏줄이 터지듯 빠져나가는 태생의 기억, 멀리 폐쇄된 소금창고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지상의 보행을 끝낸 것들이 떠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땅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땅.

    ―박상수(1974∼ )('후르츠 캔디 버스', 천년의시작, 2006)

    하얀 수피의 은백양이 바코드처럼 늘어선 아름다운 숲이다. 은백양 뿌리에 돌고래가 잠들어 있다니 바다처럼 깊다. 삶 너머로부터 배어나는 그 흰빛들에 백내장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달빛이라도 가득했다면 더더욱. 밤 휘파람은 귀신을 부른다 했다. 은백양을 통과하는 밤바람소리든, 은백양 뿌리에서 새어나는 돌고래의 울음소리든, 수풀을 헤치는 눈먼 사람의 비명소리든, 이 생 너머의 먼 것들을 부르는 휘파람 소리들이다.

    목숨이 빠져나가고 기억이 빠져나가면 영혼처럼 하얗게 내려 쌓이는 소금의 결정체들, 지상의 보행을 끝낸 것들답게 하얗다. 소금에서 돌고래에게로, 돌고래에서 눈먼 인간에게로, 눈먼 인간에서 은백양에게로 하얗게 하얗게 이월했을 것이다. 삶에서 죽음에로의 보행을 거듭하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의 숲, 기억의 숲, 영혼의 숲, 죽음의 숲. 그런 돌고래 숲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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