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歷史까지 '예능' 된 세상

    입력 : 2017.03.20 03:08

    아이가 고3이었을 때 인터넷 수능 강좌를 엿듣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수십만 수험생을 향해 강사가 이승만을 '새끼', 김구·여운형을 '선생'이라 부르는 거였다. 이런 식이었다.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노선 갈등에 기름을 부은 새끼" "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귀국하신 김구 선생" "여운형 선생 등 중도파는 좌우 합작에 나서고…."

    ▶알고 봤더니 이 정도는 약과였다. 인터넷 수능 강좌와 인터넷 방송에 막말, 부정확한 지식, 편향적 선동들이 넘쳐났다. 어느 스타 강사는 "남학생들은 씨×, 딱 까놓고 J대까지야. 그 아래 가면 인생 고달파진다. 여학생들은 재수할 돈으로 쌍꺼풀 수술해"라고 했다. 다른 강사는 "많은 국민이 박정희를 존경한대. 썩어도 이렇게 썩은 나라가 있을까. 장준하가 암살당한 순간, 이 나라 정의는 없는 거야"라고 했다. 

    [만물상] 歷史까지 '예능' 된 세상
    ▶이런 소리를 듣고 자란 어린 학생들이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얼마 전 경북 문명고 신입생들이 새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에 항의하며 입학식을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이 기존의 좌편향 교과서와 새 교과서를 비교한 끝에 이런 행동을 했을 리 없다. 한 학생은 "인터넷에서 새 교과서는 엉터리라고 해서…"라고 말했다. 교과서만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인터넷이고 방송이고 서점의 책꽂이고 그릇된 가치관으로 학생들을 잘못 이끄는 독소들이 널려 있다.

    ▶스타 강사 중의 한 명이 구설에 올랐다. 그가 과거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이 "대낮에 태화관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에 가서 낮술을 먹고" 독립선언을 한 것처럼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는 "태화관 마담 주옥경하고 (민족대표) 손병희하고 사귀었다"며 "그 마담이 D/C(할인)해준다고, 안주 하나 더 준다고 오라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TV에서 영화 '광해'를 소개하며 "인목대비가 새끼(영창대군)를 낳아" "선조가 깩 하고 돌아가셨을 때 영창대군은 두 살…"이라고 한 적도 있다.

    ▶강사들에게 청중의 머릿수는 돈이다. 아무리 영양가 있는 지식이라도 청중이 졸면 퇴출이다. 좀 더 자극적인 말, 상식을 뒤집는 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진지하고 엄숙해야 할 독립운동사마저 예능·오락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를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 사회가 오랫동안 쌓아온 소중한 가치들을 '거꾸로 읽는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하나 둘 까뒤집어버리면 남는 게 무엇일까. 설익은 지식으로 무장한 아마추어들이 예능식 말발 하나로 전문가 행세하며 세상을 헤집고 있는 게 이 경우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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