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트럼프 목에 어떤 '방울'을 달 것인가

    입력 : 2017.03.20 03:09

    트럼프는 셈이 빠른 협상가
    아베와는 19초간 손 잡고 메르켈의 악수 요청은 외면… 우리에겐 어떤 손 내밀까
    기업 괴롭히고 反美 하면서 '거친 트럼프' 대응 가능할까

    강경희 논설위원
    강경희 논설위원
    엊그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정상회담은 회동 전부터 상당한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두 사람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전임 오바마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았다. 임기 말 오바마 대통령이 유럽 고별 순방을 갔을 때 "내가 독일인으로 투표한다면 메르켈 총리를 지지할 것"이라고 각별한 신뢰를 보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는 날, 마지막 통화를 나눈 사람도 메르켈 총리였다. 반면 트럼프와 메르켈의 만남은 예상보다 더 까칠했다. 사진 기자들 요청에 메르켈 총리가 "악수할까요?" 했는데 트럼프가 못 들은 척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는 장면이 전 세계 언론에 집중 보도됐다. 대서양 양안(兩岸)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은 이 한 장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대개 외교 무대에서는 싫어도 친한 척 예의 갖추고 점잔 뺀다. 트럼프는 다르다. 제스처로도 호불호를 명확히 드러내면서 외교적 시그널을 보낸다. 트럼프는 첫 정상회담 상대인 영국의 메이 총리를 만났을 때는 기자회견장으로 걸어가면서 손을 꼭 잡고 갔다. 친밀감을 표현하다 못해 여성 총리의 손을 툭툭 건드리기까지 해 구설에 올랐다.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는 19초 동안이나 손을 꼭 잡고 악수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트럼프 시대의 한·미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트럼프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을 만났을 때 어떤 포즈로, 몇 초간 악수하는지만 봐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미국'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지난 6개월간 최순실 국정 농단과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시선이 온통 안으로만 쏠려 있는 동안 국제 질서는 변했다. 오는 4월 초에는 미·중 정상회담의 용호상박(龍虎相搏)이 벌어진다. 우리는 5·9 대선이 치러지고 차기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정상외교 불능 상태를 더 보내야 한다. 달리 방법도 없지만 이 시기를 국제 질서의 변화를 면밀히 감지하면서 실용적 외교 전략을 고민하는 정중동(靜中動)의 시기로 삼는다면 완전히 허송세월인 것만도 아니다.

    미국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17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최근 중국에 대한 착시(錯視)가 사라진 것만 해도 우리로서는 큰 깨달음이다. 중국과 경제·문화적으로 더 밀접해지면 대북 문제나 안보에서도 전폭적인 협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착각이었음이 사드 보복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중국은 한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밀접함에도 사드 이슈에 대해 온갖 치졸하고 유치한 방법을 총동원해 경제적 보복을 가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는 나라가 아니다. 오른쪽 뺨에 살짝 미운털 났는데 왼쪽 뺨을 주먹으로 후려치는 걸 당연시하는 나라라는 걸 명심하고 이번 기회에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낮추도록 무역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는 정반대다. '안보는 안보, 경제는 경제'로 철저히 분리해서 접근할 것이고 우리도 그렇게 바라봐야 한다. 안보라는 오른쪽 뺨은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통상이라는 왼쪽 뺨은 거세게 후려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대비해야 한다. 저돌적인 협상가 트럼프가 골칫덩이 북한과 감당하기 어려운 대국 중국을 다루는 것에 주파수를 잘 맞춘다면 우리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훨씬 수월하게 풀 수도 있다. 그렇지만 통상 관계에서는 "미국이 우리한테 이럴 수가…" 하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손익을 따지고 들 것이다. 한·미 FTA가 지난 5년간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었다는 FTA 옹호론자들의 긍정적 평가가 한·미 양국에서 나오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 무역 흑자국=일자리 도둑'이라고 주장해온 화법을 바꿀 리 만무하다. 아베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때 '투자와 일자리'라는 큰 선물 보따리를 가져가 환대받았다. 그런 '큰 보따리' 전략이 우리한테도 필요하다. 차기 대통령이 방미 때 삼성·현대차·LG 같은 한국 대기업들로 '팀 코리아'를 꾸려서 가는 식으로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투자도, 일자리도 듬뿍 창출한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준다면 꽤 유용할 것이다. 그러면서 과거 통상교섭본부 때처럼 굵직한 통상 전문가들을 전진 배치해 한·미 FTA 재협상 같은 통상 실전(實戰)에 조목조목 대비하면 된다. 트럼프 스타일을 잘 파악해 맞춤 대응을 한다면 한·미 관계를 수월하게 풀어가면서 국가적 실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그럴 수 있을까. 사드 배치하는 미국에 어깃장 놓고 중국 가서 고개 숙이는 어설픈 반미주의 노선이 판치고, 세계무대에서 뛰는 한국 대기업들을 국내에서 조리돌림 하기에만 여념 없는 사고방식으로는 셈이 분명한 '거친 협상가' 트럼프를 맞아 실익 없고 고달프기만 한 한·미 관계를 맞게 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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