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미래 불안한 토종 바둑 AI

    입력 : 2017.03.20 03:05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동양인에게 바둑은 오랜 세월 큰 자부심이었다. 게임으로서 독보적인 신묘함을 갖췄고, 서구권을 객관적으로 압도하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 동양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바둑의 발상국인 중국과 국가적 육성으로 바둑의 기술과 위상을 크게 끌어올린 일본, 두 나라의 종주국 의식은 뿌리 깊다. 한국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몇몇 천재의 등장으로 십수 년간 절정기를 누렸다.

    바둑은 원래 '인간 대 인간'의 승부였다. 이것이 1988년 첫 국제대회인 후지쓰배를 기점으로 '국가 대 국가'의 모습을 겸하기 시작했고, 2016년에 또 다른 얼굴을 추가했다. 알파고란 이름의 인공지능(AI) 대국 소프트웨어가 이세돌 등 뭇 세계 강자들을 꺾으면서 바둑판이 '인간 대 기계'의 운동장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은 수천 년간 동양의 독점물이던 바둑의 주도권을 서양이 빼앗아간 의미도 담고 있었다. 알파고 제작사인 딥마인드는 영국에 있고, 이 회사 소유주 구글은 미국 기업이다. 동양이 '키운' 서양 바둑이 동양을 초토화하면서 바둑은 '동양 대 서양'의 대결장이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를 보탰다.

    동양도 AI 제작에 가세하면서 딥젠고, 싱톈(刑天), 줴이(絶藝) 등 인공지능 고수들이 등장했다. 그리곤 알파고를 목표물로 자기네끼리 치열한 개발 경쟁을 거듭했다. 바둑은 여기서 '기계 대 기계' 대결이란 명함을 또 한 장 새긴다. 기계 때문에 잃었던 자존심을 기계로 되찾겠다는 동양의 꿈은 아직 알파고를 넘지 못했지만 추격 의지는 대단하다. 바둑 AI 강국은 중·일 외에도 프랑스·독일·대만 등 세계 각 지역에 퍼져 있다.

    /조선일보 DB
    이런 다채로운 얼굴을 주렁주렁 걸친 국제바둑대회가 20일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된다. 한국·중국·일본 기사 1명씩과 일본 AI 딥젠고의 4강 리그다. 월드고챔피언십이란 이름은 너무 거창하지만 기계가 인간들과 함께 겨루는 최초의 행사란 의미도 작지 않다.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기계, 국가 대 국가, 동양 대 서양(컴퓨터 기술)으로 다면화한 현대 바둑의 초상이 모두 투영돼 있다. 다만 '인간 1위 커제와 '기계 1위' 알파고가 빠진 것은 아쉽다. 구글 측이 알파고와 커제를 곧 맞대결시킬 계획 아래 이 둘을 '빼돌렸다'는 소문이 돈다.

    복기하다 보면 이런저런 감회가 따라온다. '동양 문화의 정화'라던 바둑의 패권을 '새카만 하수' 서구에 넘겼다. 그것이 인간 아닌 컴퓨터 과학의 힘으로 이뤄졌다. 바둑 컴퓨터도 인간이 만드는 건데 어떻게 인간을 능가하는 기계 탄생이 가능한가. '기계 바둑'의 한계는 어디일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우리나라 바둑 AI의 미래다. 2015년 한 차례 국제대회 우승 후 계속 하락해 온 한국 간판 AI '돌바람'은 19일 일본 전기통신대학(UEC) 주최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 출전해 8강에 그쳤다. 작년(5위) 보다 퇴보한 성적이다. 경쟁국과 달리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한 결과여서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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