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목련이 피었어요" 매일 1만명에게 편지 쓰는 스님

    입력 : 2017.03.17 03:03

    - 경북 울진 불영사 일운 스님
    2011년 6월 시작된 '萬日 편지'… 주변 풍경과 부처님 말씀 발송
    제3세계 학생들 장학금 지원도

    경북 울진은 여전히 '먼 곳'이다. 도로가 무척 좋아졌어도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울진의 꽃소식이 전국, 전 세계로 실시간으로 배달된다. 지난주에는 매화 향기, 이번 주에는 산수유와 목련꽃 소식이다. 울진 불영사 회주(會主) 일운(一耘·64) 스님이 스마트폰 앱에 띄우는 '일운 스님의 마음편지'다. 2011년 6월 시작된 편지는 일운 스님 '필생의 불사(佛事)'다. 부정기 문자메시지로 시작해 2013년 6월부터는 매일, 2014년 7월부터는 앱으로 옮겨 전하는 편지의 마지막 회향 예정일은 2038년 10월 31일, 만일(萬日)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16일 현재 1287회가 발송됐다. '100일 기도' '1000일 기도'가 많은 불교계에서도 '1만일 기도'는 흔치 않다. 2038년이면 일운 스님의 나이는 만 85세.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각오다.

    편지는 그날 그날 불영사 주변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부처님 말씀을 한글과 한문, 영문으로 적고 그 아래에 일운 스님이 단상(斷想)을 붙인다. 수신자는 국내는 물론 미국, 유럽, 대만 등에 공식적으로 1만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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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 전 퇴락하던 불영사 주지로 부임해 오늘의 아름다운 절로 가꾼 일운 스님. 그는“불영사의 좋은 공기, 물, 음식, 부처님 가르침 등 좋은 것들을 세상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지난 9일자‘일운스님의 마음편지’에 첨부된 천축선원 뒤뜰의 매화 사진. /김한수 기자·불영사
    수신자들 가운데 1400명은 매월 1만원씩 보시하는 '염불만일수행결사회원'(후원회원)이다. 후원금은 장학금이 되어 캄보디아, 네팔, 인도, 태국의 어려운 학생과 울진 지역 학교 등에 보내진다.

    일운 스님의 '만일 불사'는 불영사 건축 불사와 사찰 음식 불사에 이은 3부인 셈이다. 스님과 불영사의 인연은 1991년 시작됐다. 1969년 고교생 때 청도 운문사로 출가해 비구니계 큰어른 묘엄(1931~2011) 스님의 상좌가 된 그는 1971년 은사를 모시고 수원 봉녕사로 옮겨 공부하고 수행하다 1986년 타이완으로 유학을 떠났다. 대중 포교에 적극적인 타이완 불교의 모습을 보고 배운 후 5년 만에 귀국할 무렵, 문중의 어른 스님들이 대만까지 찾아와 '불영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불영사는 651년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고찰. 불영사가 자리한 행정구역이 '금강송면'일 정도로 쭉쭉 뻗은 금강송 숲과 어우러진 계곡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지만 당시엔 퇴락했다. 일주문(一柱門)도 없었고, 당장 식수(食水)부터 끌어와야 할 정도였다. 1991년 추석 직후 주지로 부임한 스님은 차근차근 불사(佛事)를 시작해 크고 작은 전각 25동을 세웠다. 불사 방식은 '밥 있으면 밥 먹고, 죽 있으면 죽 먹고, 그것도 없으면 굶자'는 식이었다. 선원도 터 닦을 돈이 있으면 터를 닦고 쉬다가 또 공사를 재개했다. 그렇게 지어진 천축선원은 1년 중 10개월 동안 안거를 이어가며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수행과 노동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사찰음식축제는 2009년 시작했다. 제철 재료와 된장, 간장, 참기름, 들기름으로 수백 가지 음식을 만들어내는 절 음식의 비밀 아닌 비밀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젠 1만명씩 찾아오는 울진의 대표적 축제가 됐다. 2013년엔 울진읍내에 연면적 125평 규모의 심전문화복지회관도 설립했다.

    일운 스님이 벌이는 모든 불사를 관통하는 생각은 '불교와 사찰의 좋은 것을 세상과 나누자'는 것이다. 좋은 물과 공기, 음식 그리고 가르침을 나누자는 것이다. 그동안 편지를 정리해 '일운 스님의 속삭임, 심·심·심'(담앤북스) '산사에 홀로 앉아'(모과나무) 등 2권, 사찰음식에 관한 책 '스님의 비밀레시피' '김치나무에 핀 행복' '사찰음식이 좋다'(이상 담앤북스) 등 3권을 펴낸 것도 같은 뜻이다.

    스님의 메시지는 늘 하나, '지금을 잘 살자'이다. 2038년까지 갈 길을 생각하면 아득하지만 걱정이 없다. "제가 편지에서 늘 강조하는 이야기도 '지금'입니다. 지금 비우면서 잘 살면 좋은 인과(因果)를 맺게 되고 행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는 0살이다'라고 해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출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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