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고영태 녹음 파일'도 이제 수사해야 한다

    입력 : 2017.03.17 03:06

    고영태 등 7인의 통화 내용 녹음 파일은 2391개
    "최순실의 국정 개입으로 끌고 간다… 최순실은 지는 해이고, 박 대통령도 끝나는 거야"

    최보식 선임기자
    최보식 선임기자
    검찰은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면 조사할 것이다. 검찰이 원하는 바를 이뤘다. 하지만 검찰은 가장 원치 않는 수사도 이제 해야 한다. 실수든 고의든 검찰이 덮어버린 '고영태 녹음 파일' 의혹에 관한 것이다.

    고영태씨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7인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은 2391개다. 언론에 일부 보도됐듯이 이 속에는 작당해서 뭔가를 꾸미고 있는 듯한 말들이 담겨 있다. 일반 직장인들의 대화가 아니다.

    "좀 더 강한 것으로 한꺼번에 터트려야 한 방에 죽일 수 있지." "내가 재단에 부사무총장으로 들어가야 해. 거기는 우리가 장악해야 해."

    "이렇게 틀을 딱딱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야." "무슨 작전 이야기인데?" "최순실의 국정 개입으로 끌고 간다. 최순실은 지는 해이고, 박 대통령도 끝나는 거야."

    이에 대해 고씨는 "사석에서 흔히 하는 농담조의 말이었다. 검찰에서 이미 조사받고 '문제없다'고 해 끝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녹음 파일을 전부 들어본 법조 담당 기자는 "고영태 일당은 국정 농단의 공범으로 최순실을 이용한 것"이라고 확언했다. 이들끼리 짜고서 인사 개입과 매관매직을 한 정황도 나온다고 했다.

    이런 고씨가 아니었으면 박 전 대통령과 '최태민 딸' 최순실의 내밀한 관계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부 고발자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줘야 한다. 의도의 순수성을 따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태극기 집회에서는 '최순실 국정 농단'은 '고영태 일당의 국정 농단'으로 바뀐 지 오래됐다. 대통령 탄핵은 고씨 등이 일부 언론과 합작한 기획 폭로에서 촉발된 정권 찬탈 행위라는 절대적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의 믿음은 아직까지 검찰·특검·법원·언론 어디에도 어필하지 못했다.

    헌재의 재판 과정에서 "녹음 파일을 다 들어보자"는 식의 주장은 시간을 끌려는 대통령 대리인단 측의 지연 전술로 비쳤다. 본질은 대통령이 최순실을 위해 권한을 남용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이미 여러 증인 진술과 증거 자료에서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국정 농단 사건이 처음 어떻게 외부로 불거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헌법재판관들의 판단에도 '녹음 파일'은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다.

    설령 태극기 군중이 어리석을 수 있다. 하지만 주말마다 수십만명씩 몰려나와 외치는 것에 대해서는 응답하는 게 국가기관의 도리다. 한 달 전 박영수 특검은 "수사 기간이 연장된다거나 그런 사정이 생기면 그때 가서 녹음 파일 조사 여부 등을 판단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검찰에서 이미 다 조사된 것으로 알고 있고 구체적으로 혐의가 논의된 바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은 검찰에서 다 조사된 것이 아니었다. 녹음 파일의 대화 내용을 분석하고 혐의점을 갖고 들여다본 적도 없었다.

    검찰은 녹음 파일 관련자 중 4명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한 것밖에 없었다. 최순실씨와 대통령의 공모 관계 및 뇌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의 타깃은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녹음 파일 2391개 중 29개만 녹취했고, 법정에서 제출된 최순실 등의 진술 조서에 그 일부가 첨부됐다. 수사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는 용도로만 썼다는 뜻이다.

    녹음 파일에는 전문가의 '공작' 냄새가 풍기는 내용도 나온다. "니 계정하고 메일 주고받고 너도 연관됐다고 생각되는 거 있지? 그거는 너도 다 없애." "해지하고 그거를 유심칩 뽑아서 찢어버리고, 전화기를 그냥 한강 같은 데다가 던져버리라고…." 이 통화 속 목소리는 정치권 언저리에 있던 여성이었다. 그녀를 조사한 검찰 진술 기록은 없었다.

    당초 검찰은 녹음 파일의 존재조차 밝히지 않았다. 온갖 수사 정보와 피의 사실을 흘려 '언론플레이'를 하던 검찰이 녹음 파일에 대해서만 함구해왔던 것이다.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은 국정 농단 수사가 검찰에서 특검으로 넘어가고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녹음 파일 조사가 '본질'을 흐린다는 이유로, 국정 공백과 불투명한 정치 상황을 끝내기 위해 탄핵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이유로 뒷전에 밀렸다.

    이제 대통령이 내려왔고 검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 됐다. 더 이상 본질을 흐린다고 녹음 파일을 덮어둘 수는 없다. 그게 한낱 농담조의 말에 불과한 것인지, 고씨 등이 사적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기획하고 다른 세력과 결탁한 국정 농단의 증거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 민심에 휩쓸렸거나 미래 권력에 눈치 본 치욕(恥辱)의 검찰 수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녹음 파일 조사는 검찰이 스스로에게 겨누게 될 '칼'이 될지 모른다. 지난 수사에서 덮었던 검찰 특수본이 과연 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먼저 검찰 내부에서 '우리는 공정한 검찰인가 정치 검찰인가'라고 물음을 던져야 한다. 검찰의 위상은 탄핵당한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보다 원치 않는 녹음 파일 수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더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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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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