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중국의 불편한 이웃들

    입력 : 2017.03.17 03:04 | 수정 : 2017.03.17 12:37

    최유식 국제부장
    최유식 국제부장

    6·25전쟁도 미국을 상대로 이겼다고 선전하는 중국이 유독 말을 꺼리는 전쟁이 있다. 1979년 중·베트남 전쟁이다.

    그해 2월 17일 새벽, 중국은 20만 대군과 400대의 탱크, 1500문의 각종 포를 동원해 베트남으로 진격했다. 베트남은 지방 수비 병력을 중심으로 10만명이 맞섰다. 전쟁 초기는 중국의 우세로 보였다. 베트남 북부 도시와 군사 거점 20여곳을 점령하면서 수도 하노이를 위협했다. 하지만 3월 초가 되면서 중국군은 돌연 철수를 시작했고, 전쟁은 3월 16일 한 달 만에 끝이 났다.

    중국군이 철수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으로 주요 거점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거점 주변 전투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베트남군은 산악지대에 은신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했고,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투로 중국군을 괴롭혔다. 이런 공격에 전·후방 부대 간 연락이 두절되고 희생자가 계속 늘자 견디지 못하고 철수를 택한 것으로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당시 중국군 전사자는 3만명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의 시발은 중소(中蘇)분쟁이었다. 구소련 쪽에 섰던 베트남이 1978년 말 친중(親中) 크메르루주가 집권한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중국이 발끈했다. 전쟁의 목적은 캄보디아 구하기였다. 중국이 공격을 시작하면 캄보디아에 투입된 15만의 정예 베트남군이 하노이 수비를 위해 철수할 것으로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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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1979년 중월전쟁에 참전한 중국인민해방군 노병. (사진 오른쪽) 중월전쟁 중 베트남에 의해 잡혀온 중국 포로. /주간조선·AFP
    하지만 캄보디아에 있는 베트남의 주력군이 돌아올 일은 없었다. 베트남은 지방수비대와 민병만으로 중국의 대군을 몰아냈다. 중국은 베트남에 교훈을 주겠다고 나섰다가, 교훈만 얻고 퇴각했다.

    중국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에 걸쳐 62개국을 주변국 외교의 대상으로 본다고 한다. 중국이 경제 성장에 매달렸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주변국 관계는 비교적 평온했다. 하지만 2010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이후에는 근육질 외교가 일상화됐다. 남중국해에서 수시로 무력시위를 벌이고, 미국의 동맹국인 우리나라와 일본, 필리핀 등에는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수틀리면 힘으로 손보겠다는 식이다.

    중·베트남 관계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속에 다시 삐걱대고 있다. 상황은 30여년 전 중·베트남 전쟁 때와 달라졌다. 중국은 이미 베트남이 상대하기 버거운 강대국이 됐다. 경제적으로도 연간 무역액이 1000억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양국 관계가 밀접해졌다. 그런데도 베트남은 여전히 중국에 쉽지 않은 나라이다. 베트남은 미국과 화해하면서 관계를 회복하고, 러시아·인도·일본 등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기민한 외교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러시아산 잠수함, 인도산 미사일 도입 등을 결정하면서 해군력도 키우고 있다. 중국도 최근 들어서는 이런 베트남과 관계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주변에는 전략 무기 경쟁까지 펼치는 인도를 비롯해 적잖은 불편한 이웃들이 있다. 한국은 그런 나라들과 달리, 1992년 수교 이후 25년간 중국과 큰 탈 없이 서로 윈윈하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영토나 영해를 둘러싼 분쟁도 없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최근 중국의 보복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 하나의 불편한 이웃을 더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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