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후보들인지, 범죄자들 모임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나요?"
프랑스가 대선 1차 투표를 40일 앞두고 유력 후보 3명이 모두 검찰 조사 대상이 되면서 유권자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 1~3위 후보가 모두 범죄 혐의를 받고 있어 "대선이 난장판이 됐다"는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프랑스 대선은 다음 달 23일 1차 투표를 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위를 대상으로 5월 7일 2차 결선투표를 치른다.
15일(현지 시각)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프랑스 검찰은 무소속 후보인 에마뉘엘 마크롱(40) 전 경제장관에 대한 예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마크롱은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오른 뒤 역전승을 할 것으로 전망되는 후보다. 그간 다른 후보들과 달리 특별한 부패 논란이 불거지지 않았으나 지난 14일 처음으로 검찰의 내사 대상이 된 사실이 알려졌다.
검찰은 프랑스 경제부 산하의 '비즈니스 프랑스'가 2016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가전박람회(CES) 행사를 준비하면서 경쟁 입찰 없이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경제장관이었던 마크롱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는 데 관여한 것으로 확인되면 곧바로 정식 조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마크롱이 내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 공화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63)도 '피의자 신분'이 됐다. 출마 선언 당시만 해도 보수표를 모아 결선투표에 진출할 것으로 전망됐던 피용은 의원 시절 자기 아내와 두 자녀를 보좌관으로 허위 채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용은 "가족이 실제로 보좌관으로 일했다"며 '횡령 스캔들'을 부인했지만 지지율이 급락하고 대선 캠프 관계자들도 줄줄이 이탈했다.
이전까지 내사 대상이었던 피용은 15일 법원에 출두해 무죄를 주장할 예정이었으나 검찰은 그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건너뛰고 기습적으로 수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일간 르몽드 등 현지 매체들은 "후원자에게서 6000만원 정도의 양복 선물을 받은 일까지 더해져 피용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상태"라며 "지금으로선 제1야당 후보가 결선투표에도 진출하지 못할 것이 확실시된다"고 보도했다.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극우 국민전선(FN)의 대선 후보 마린 르펜(49)도 범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르펜은 2015년 한 프랑스 기자가 국민전선을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자 IS가 포로를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진을 트위터로 그에게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폭력적이거나 테러를 자극하는 사진을 유포할 수 없게 정한 법을 위반한 혐의다. 르펜은 "유럽의회 의원으로서 면책특권이 있다"며 조사를 거부했지만 이달 초 유럽의회가 "사진 유포 혐의에 한해 르펜의 면책특권을 박탈한다"고 결정하면서 수사기관의 요청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르펜은 유럽의회 공금을 유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자신의 보디가드와 정당 보좌관을 유럽의회 보좌관으로 허위 고용해 월급을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것이다.
유력 후보가 모두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면서 프랑스 유권자들은 평소 지지하던 정당과 상관없이 "다 똑같이 대통령으로 부족하다" "차라리 투표를 포기하는 편이 낫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선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등 EU 결속력이 약해지는 시점이라 프랑스 차기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한데 유력 후보라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앞가림도 똑바로 안 하는 사람들"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14일 오피니언웨이의 최신 여론조사에서 르펜은 지지율 27%로 1위 자리를 지켰다. 마크롱은 2위(24%)로 결선투표에 올라갈 것으로 나타났고, 피용은 지지율 20%로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할 것으로 조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