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대통령'의 悲運, 박근혜로 끝날 것인가?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7.03.14 03:11

    憲政史 70년 대통령 11명 중 망명 자살 등 8명이 悲運 겪어
    박근혜도 이제 '과거' 됐는데 굳이 법정에 세우려 해봐야
    대선과 나라 안정에 도움 안 돼… 이제 앞을 보고 나아가기를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우리 헌정사(憲政史) 70년에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중 8명이 비운(悲運)의 대통령이었고 3명만이 온전했지만 이들 역시 평탄치 않은 말년을 보냈다. 초대 이승만은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에 밀려 하야하고 망명지에서 별세했다. 윤보선은 내각제의 대통령으로 5·16 쿠데타로 물러났고, 최규하는 말 그대로 '임시 대통령'이었다. 박정희는 장기 집권 끝에 부하에게 총 맞아 사망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퇴임 후 감옥살이를 했으며 노무현은 퇴임 후 자살했다. 그리고 박근혜는 임기 중 탄핵으로 파면됐다.

    이런 역사를 단순히 비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지극히 비정상이며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 정치제도에 질병적 요인이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어디엔가 치명적 DNA가 우리 권력 구조에 내재한다는 얘기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제도에 문제가 있는가? 우리 지도자 즉 사람에 문제가 있는가? 아니면 우리 국민에 문제가 있는가?

    우리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민주제도를 성취하고 그것을 정착시켰다고 자부해왔다. 세계 여러 나라도 우리가 군주제와 일제(日帝) 식민, 그리고 전쟁과 분단을 극복하며 빠른 시간에 세계의 유수한 민주국가로 발돋움했다고 칭찬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도 정치 잘못하면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내는 그런 국민적 저력을 가진 나라'라고 자화자찬해왔다.

    과연 그런가? '잘못'을 교정하는 것을 '민주'라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애당초 '잘못'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왜 '잘못'이 만들어지고 또 반복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왜 대통령마다 비운과 불운과 실망과 저주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다고 해도 과거와 현재에 비춰 미래를 말한다면 그 역시 비운의 결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우리 자신을 과감히 바꾸지 않는 한 오늘의 정치적 정체와 권력적 독선은 없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엄정한 역경에 휘둘리고 있다. 국민의 마음을 산 지도자가 없다. 국민을 친(親)과 반(反)으로 가르는 분열주의자들만 있다. 국민 앞에서 자제와 성숙함을 논하고 국민의 격(格)을 논하는 정치인은 안 보이고 부화뇌동하는 기회주의자들만 눈에 띈다. 마치 대통령이 다 된 듯이 군림하는 사람은 비운의 역대 대통령들이 걸린 '대통령병(病)'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

    '제도'도 이젠 수명이 다 됐다. 어느 헌법재판관이 보충 설명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문제가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제도'에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다.

    국민도 덩달아 극단주의로 밀려가고 있다. 안보와 외교의 난국임에도 국민적 단합은 기대하기 힘들다. 다수를 위해 참고 힘을 보태는 성숙함도 보이지 않는다. 좋으면 간이라도 내줄 것 같고, 싫으면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달려드는 심리 조절 불능 상태가 판을 친다. 물러나는 대통령을 향해 구속하라고 외치고, 물러나는 헌법재판관을 향해 '퇴임하면 두고 보자'고 협박하는 다중의 분노에 전율마저 느낀다. 우리에게는 '한발 물러남'이 없다.

    헌재의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 법치적이고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헌재의 판결에는 나 자신 승복할 수 없는 법리(法理)도 있다. 헌재의 판결이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승복이 아니라 행동의 절제다. 헌재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것을 폭력적 또는 공동체가 정한 규칙에 반하는 방식으로 표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엎어진 사람 밟고 시신에 칼질하고 모욕주고 막말하며 '이겼다'며 승리에 도취하는 것은 민주 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나락에 떨어진 듯한 비통함을 삭이고 있을 사람에게 '왜 승복 성명을 안 내느냐' '언제 청와대를 비울 것인가' '왜 안 나가나, 불법 점거다' 운운하며 몰아세우는 야권과 언론의 태도에선 육식동물의 냄새가 난다. 만일 헌재가 기각 판결을 냈다면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을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과연 민주 시민이고 또 시민이기 이전에 공정한 인간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제 그 정도 했으면 앞을 보고 나아갔으면 한다. 불행하지만 '박근혜'는 이제 우리에게 '과거'다, '전 대통령'이다. 그만큼 했으면 분이 풀릴 만도 한데 그를 굳이 법정에 세우는 것은 대선에도 안 좋고 나라 안정에도 안 좋다. 박근혜 쪽도 '방어'가 아니라면 '공격'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언제쯤 우리는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상처 없이 온전히 권좌를 떠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인가. 4·19 때 이승만을 하야시키고 그가 경무대(그때는 청와대가 아니다)를 떠나 망명길에 오를 때 그를 애석해하며 전송했고, 그가 주검이 돼서 고국에 돌아왔을 때 그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눈물로 애도했다. 그것이 한국인의 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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