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기업들, 四面楚歌라고 울기만 하나

    입력 : 2017.03.13 03:05

    김덕한 뉴욕 특파원
    김덕한 뉴욕 특파원

    생산 시설을 미국 밖으로 옮기지 못하게 기업들을 협박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근'도 확실하게 준다. 취임 후 6주 만에 폐지하거나 시행 연기한 규제가 90건에 이른다. 폐지된 규제에는 통신 회사의 개인 정보 도난·유출 방지, 금융사의 고위험 거래 제한 등 '이런 것까지 없애도 되나' 싶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 기업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트럼프를 상대로 로비를 펼친다. GM·포드 등 미국 자동차 3사가 주축이 된 미국자동차공업협회(AAM)는 한 자동차 회사가 생산하는 모든 차의 평균 연비를 지정된 기한까지 낮추도록 한 규제의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백악관의 각종 간담회에 단골로 초청되며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는 자동차 3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자기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제 완화를 시도할 게 뻔하다. 반면 세계 5위 자동차 회사지만 AAM 멤버가 아닌 현대·기아차의 로비력은 그들에 댈 수도 없을 것이다.

    환경과 인권, 복지를 희생하는 트럼프 노선에 선뜻 동의할 수는 없다. 미국 기업에만 유리한 '당근'은 장기적으로 미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 독(毒)이 된다는 경고도 있다. 그러나 당장 급한 쪽은 우리 기업들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트럼프의 지원을 받으며 트럼프 정부가 한없이 높게 쌓아올리는 보호무역 장벽 뒤에 숨은 미국 기업들과 싸워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현지 진출한 롯데마트 점포에서 LG생활건강 화장품 공장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10일(현지시각) 알려졌다. 사진은 소방안전 미흡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받아 문닫은 지린성 지리시의 롯데마트 지점 밖에 9일 시민들이 서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한국 기업들은 대통령 탄핵과 중국의 경제 제재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부닥쳐 있다. 롯데는 그룹 소유 골프장을 어쩔 수 없이 사드 부지로 내줬다가 중국에서 롯데마트의 절반이 영업정지를 당할 만큼 엄청난 보복에 시달린다. 롯데그룹 한 임원은 주주 이익 침해 소송을 당할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정부에 협력했는데 국내에서조차 반(反)사드 진영의 항의 시위를 당하자 "경제 외적 상황이 더 힘들다"고 푸념했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기업들이 트럼프 시대나 사드 사태, 국내 정치 문제 등에 대응할 역량이 부족하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동원할 네트워크도 뚜렷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트럼프로부터 애플의 팀 쿡, 구글의 래리 페이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 IT 거물들과 함께 외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트럼프타워에 초청받았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뉴욕 기업인들은 당시 출국 금지되지 않았던 이 부회장이 굳이 특검에 출국 가능 여부를 물어보는 바람에 발이 묶인 것을 의아해했다. "도망쳤다"는 비난은 받지 않을 텐데 눈치를 보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놓쳤느냐고 묻는다. 그들은 한국 기업들이 정부·검찰·여론에 '찍히는' 것에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마저 느낀다는 사실을 모른다. 롯데 임원도 "기업은 무한대의 애국심을 요구받지만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응원은 받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는 자업자득 측면도 있다. 대기업의 횡포, 오너 일가의 전횡, 편법·탈법을 동원한 반칙 상속, 정경 유착과 부패라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업들은 이번처럼 세계 경제 환경 변화와 내부의 정치 변동이 초래하는 위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기업 활동에 당당하지 못하게 하는 내부 문제를 철저히 살펴 환골탈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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