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사학자 눈에 비친 한국 가톨릭史

    입력 : 2017.03.10 03:04 | 수정 : 2017.03.10 08:03

    서정민 '한국 가톨릭의 역사' 펴내

    "천주교와 개신교의 한국 선교를 '예수회식' '비(非)예수회식'이란 잣대로 보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펴낸 서정민 교수.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펴낸 서정민 교수. 그는“일반인들도 교양서로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개신교 교회사학자 서정민 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대 교수가 최근 '한국 가톨릭의 역사'(살림)를 펴냈다. 개신교 학자가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좀 더 객관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수회식' vs '비예수회식'이란 기준도 그렇다. 그가 말하는 '예수회식'은 선교지의 언어와 문화, 전통을 습득하고 현지인과 깊이 교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토착화'하는 방식이다. 이에 반해 '비예수회식'은 복음의 유일 진리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의 천주교 전래 과정에는 '예수회식'과 '비예수회식'이 혼재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럽에서 벌어진 선교 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교황의 명령(1777년)으로 예수회가 해산된 시기에 천주교의 조선 전래가 이뤄졌다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학문적 관심에서 출발해 조선의 조건에 맞게 천주교를 받아들이려 한 초기 인물들은 예수회식이다. 반면 북경 주교의 제사금지령에 따라 위패를 불사르는 등의 방식은 '비예수회식'이다.

    예수회식 선교의 대표 인물이 정하상이라면, 비예수회식 방식의 주연은 황사영이다. 실학자들은 중국에 왔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저작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였지만, 제사 문제를 문의할 당시 북경의 주교는 '비예수회식' 방식으로 단호하게 금지했던 것.

    서 교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서 역사를 쓴다는 점 때문에 조심스러웠고, 집필 제안을 받고 망설였다"면서 "그래서 신앙사보다는 사회사, 학술서보다는 강의록으로 집필 방식을 정했다"고 말했다. 그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박해를 거쳐 19세기 말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가톨릭의 장대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초기에는 박해 트라우마 때문인지 자기 몰입적인 모습을 보이던 천주교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김수환 추기경 등장 이후 제사 문제 등에서 토착화 입장으로 바뀌고 사회 정의 문제에 앞장서는 등 변화해온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회식' '비예수회식' 중 어느 쪽이 선교에 유리할까? '정답'은 없다. 예수회 선교사들이 직접 선교한 중국과 일본에선 천주교가 착근(着根)하지 못한 반면, '공격적 선교'라는 지적까지 받는 개신교는 한국에서 강한 교세를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서 교수는 "어떤 방식의 선교가 더 효과적인지는 역사적으로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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