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수로 의식 잃었는데 뇌졸중 처치… 노인을 위한 의사 드문 한국

    입력 : 2017.03.09 03:03 | 수정 : 2017.03.09 08:32

    [고령자 맞춤 의료서비스가 없다] [上] 노인전문 병원·의사 태부족

    - 젊은 사람 치료하듯 했다가…
    빈혈 증상에 한번에 다량 수혈, 호흡곤란 증세 더 악화돼 아찔
    "소아과 많은데 왜 노인과 없나"

    - 65세이상 女 4.5·男 3개 질환
    여러 科 돌면서 각각 처방받아 의사들 전체적 약물 특성 못봐
    상호 충돌 효과로 부작용 빈발

    - 어르신, 약 과다 복용도 심각
    입원전 90%가 평균 8가지 복용

    경기도 수원에 사는 최모 할머니(86)는 고혈압, 당뇨병, 관절염 등을 지병으로 앓고 있다. 동네 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아 매일 복용한다. 그런데 2주일 전부터 식사를 거의 못 하고, 전신 쇠약감과 호흡 곤란 증세가 심해져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혈액 검사를 해보니 헤모글로빈 혈색소가 3.4g/dL(정상치 12~16)로 심한 빈혈 증세를 보였다. 이에 의료진은 급히 수혈을 시작했으나 호흡 곤란 증세는 오히려 악화됐다. 최씨는 결국 노인 환자를 전문으로 보는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 내과로 이송됐다.

    ◇허점 드러나는 부실 고령 의료

    65세 이상 인구가 급격히 늘면서 병원을 찾는 고령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의료진과 환자들의 고령 의료에 대한 인식과 지식, 대처 시스템이 부족해 노인 환자들의 건강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노인 의료의 문제점이 최씨의 진료 과정 곳곳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65세 이상 고령자 질환 및 의료 실태 그래프
    우선 최씨의 빈혈 원인은 만성적인 위장 출혈이었다. 최씨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진통제를 여러 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었다. 진통제 장기 복용은 위장 출혈을 일으킬 위험이 크고 이는 빈혈로 이어진다. 게다가 최씨는 같은 성분의 약물을 중복 복용하면서 어지럼증과 전신 쇠약감이 악화됐다. 동네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매일 꼬박꼬박 약을 복용한 것이 병을 키운 꼴이 된 것이다.

    최씨가 찾은 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최씨가 빈혈이라는 이유로 한꺼번에 6팩(1팩당 약 300cc)의 피를 투여했다. 환자가 고령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노인병 내과 김선욱 전문의는 "노인 심장은 용량이 작은데 과부하 혈액이 심장에 몰리면서 '울혈성 폐부종'이 생겼고, 그래서 수혈 후 숨이 더 찼던 것"이라며 "노인 신체의 특성을 모르면 일반 성인에게 하는 통상적인 의료 행위가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과는 많은데 노인과는 희귀

    한사람이 23가지 약 섞어 먹기도 - 어지럼증과 전신 쇠약감으로 최근 노인병 내과를 찾은 74세 할머니가 매일 먹던 23가지 종류의 약들. 고혈압약, 고지혈증약, 위장약, 장기능 개선제, 항불안제, 수면제, 비타민약, 소화제 물약 등이다.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종합병원 입원 직전 10명 중 9명이 매일 평균 7.95개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사람이 23가지 약 섞어 먹기도 - 어지럼증과 전신 쇠약감으로 최근 노인병 내과를 찾은 74세 할머니가 매일 먹던 23가지 종류의 약들. 고혈압약, 고지혈증약, 위장약, 장기능 개선제, 항불안제, 수면제, 비타민약, 소화제 물약 등이다. 65세 이상 고령자들은 종합병원 입원 직전 10명 중 9명이 매일 평균 7.95개 약물을 복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지난달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식중독 증세로 응급실을 찾은 79세 할아버지 권모씨가 진료를 받고 처치를 기다리는 도중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의료진은 뇌졸중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급히 뇌 CT를 찍었다. 하지만 뇌는 정상이었다. 환자에게 링거액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의식이 멀쩡하게 돌아왔다. 노인은 탈수가 조금만 심해도 의식을 잃는 경우가 잦은데, 의료진이 이런 노인 특성을 간과한 것이다.

    보통 노인은 열이 나면 헛소리를 하거나 흥분 발작 증세를 보인다. 섬망(�妄) 증상이다. 이를 모를 경우엔 뇌질환을 의심하거나 치매 증상으로 진단하고 잘못 처방하는 경우가 잦다고 노인의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약 과다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하다. 90세 할아버지 김모씨는 종합병원 5개 진료과를 번갈아 다니며 진료를 받는다. 비뇨기과, 호흡기내과, 안과, 심장내과, 정형외과 등이다. 하루에 먹는 약만 12가지다. 그러다 어느 날 어지럼증이 생겨 정상적으로 걷지 못했다. 나중에는 신장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입원했다. 12가지 약물을 조사한 의료진은 "약물이 상호 충돌하면서 어지럼증이 생겼고 신장에도 해를 끼쳤다"고 결론 내렸다. 김씨에게 5개 진료과 의사들은 자기 분야 문제만 보고 약을 처방했을 뿐, 약물 복합 복용이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지 전체적인 상황은 보지 못한 것이다. 국내에 아이들을 특화해 진료하는 소아과 전문의는 있지만, 노인 질병을 종합적으로 진료하는 노인의학 전문의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병원에 노인내과를 운영하는 곳은 4~5곳뿐이다.

    국민 건강 영양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여성은 평균 4.5개의 만성 질환을 앓고 있다. 남자는 3개다. 흔한 만성 질환은 고혈압, 요통, 관절염, 녹내장, 당뇨병 등이다. 종합병원 입원 직전 노인들의 약물 복용 실태 조사를 보면(대한노인병학회지) 한국 노인 10명 중 9명이 매일 약을 먹으며, 평균 7.95가지 복용한다. 많게는 하루 23가지 약물을 복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 김창오 교수는 "현재의 각개전투 방식 노인 의료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 효율성이 낮다"며 "노인병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관리를 하는 의료 서비스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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