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의 노벨문학상처럼 미술·문학 경계도 사라질 것"

    입력 : 2017.03.09 03:03

    그림소설집 낸 화가 황주리, 쓸쓸해도 순수한 짝사랑 이야기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는 마법의 책 됐으면 좋겠네요"

    열네 살 '베티'는 불도그이다. 아랫니 네 개가 밖으로 삐져나올 만큼 고약하게 생겼지만, 개미 한 마리를 봐도 깜짝 놀라고 도둑이 와도 짖을 줄 모르는 순둥이다. 그래도 행복하다. 동물병원에서 죽어가던 자기를 구해준 영화감독 오빠, 충혈된 한쪽 눈에 매일매일 안약을 넣어주는 할머니, 자기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언니와 한집에 살아서다. 모자 쓴 베티, 화장하는 베티, 바이올린 켜는 베티, 지하철 타고 할머니집 가는 베티를 그려놓고 언니는 중얼거린다. '너처럼 아름답고 멋진 개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글 잘 쓰는 화가' 황주리(60)가 그림소설집을 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詩) 'One word more(한마디만 더)'에서 따온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노란잠수함)가 소설 제목이다. "기억 상실의 시대에 세상을 향한 진심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건너뛴 심장의 박동에 관한 이야길 하고 싶어" 펜과 붓을 동시에 들었단다.

    황주리 그림소설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는 표지가 흑백과 컬러 두 개 버전으로 나왔다. “나이 드신 분들은 컬러풀한 그림을 좋아한대서요, 하하!”
    황주리 그림소설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는 표지가 흑백과 컬러 두 개 버전으로 나왔다. “나이 드신 분들은 컬러풀한 그림을 좋아한대서요, 하하!” /김지호 기자

    소설집 맨 앞에 실린 '불도그의 편지'는 주인을 향한 단 하나의 순정을 보여주고 떠난 충직한 개 이야기다. 개가 화자(話者)가 돼 써내려간 '연서(戀書)' 형식의 소설은 황 작가 가족의 실제 이야기이기도 하다. "3년 전 죽은 남동생과 그 애가 길렀던 개 이야기예요. 동생이 이사 가면서 내가 4~5년 대신 길렀는데 주인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 그 사랑이 너무 예뻐서 베티 그림을 많이 그렸었죠. 개가 먼저 죽고 1년 뒤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밥 비벼 먹여주고 안약 넣어주던 할머니가 제 어머니인데, 이 소설 읽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이 퉁퉁 부으셨더라고요."

    그림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한 건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였다. "소설은 한 번도 안 써봤다고 했더니 '당신 그림이 바로 소설'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실제 써보니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술술 풀려나갔어요(웃음)."

    사랑 이야기다. 5년 전 펴낸 첫 그림소설 '그리고 사랑은'이 남녀 간 사랑과 갈등을 그린 거라면 이번 소설집엔 짝사랑이 많다. "사랑의 가장 위대한 유전자가 짝사랑 아닐까 생각했지요. 주인을 사랑한 개, 체게바라를 사랑한 탈북 여인 이야기처럼 한 방향으로만 가는 쓸쓸하지만 순수한 사랑." 여행광인 황주리가 거쳐 갔던 세계 곳곳의 풍경도 소설에 녹아 있다. 어느 안경사의 사랑을 그린 '한 남자와 두 번 이혼한 여자'엔 전라도 증도부터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티베트 소금 호수의 풍광이 펼쳐진다.

    "가수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나의 소설 쓰기를 더욱 고무시켰다"며 황주리가 웃었다. "일종의 문화혁명이죠. 모든 예술은 하나라는! 미술과 문학의 경계도 사라질 거라고 믿어요." 포옹하고, 입맞추고, 어깨를 다독이는 황주리 특유의 따뜻하고도 유머러스한 그림을 감상하는 건 이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제 그림소설이 누군가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마법적 상상력을 뿜어내길 소망해요. 옥상에서 떨어져 죽고 싶을 괴로웠던 사람이 이 소설 읽고 '아, 살고 싶다' 하고 마음을 바꿔먹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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