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영이 입은 '메디아'… 이처럼 꼭 맞는 옷 있을까

    입력 : 2017.03.08 03:04

    [국립극단 연극 '메디아' 이혜영]

    넘치는 카리스마로 관객 압도… '혼자 겉돈다'는 혹평 얻기도
    이번 무대에서는 '호흡' 강조

    "개성 강한 연기 놓고 싶었지만 그게 결국 나 자신이더라"

    "이렇게 저 자신을 쏟아낸 적이 있었던가요. TV 카메라 앞에도 숱하게 서봤지만 거기선 생각할 여유를 많이 주지 않아 늘 아쉬웠죠. 대사에 정신을 집중하게 해주는 환경을 고려해 볼 때, 제 생존의 시작과 끝은 역시 무대라고 생각해요."

    배우 이혜영(55)에게 사람들은 '압도된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국립극단의 연극 '메디아'의 주인공 메디아 역을 맡은 뒤 무대에 올랐을 때 각종 팬 게시판엔 "이혜영이 오르니 공기가 달라진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5일까지 객석 점유율은 90%. 그리스 조각상처럼 선 굵게 이어진 눈매와 골격, 시낭송을 듣는 듯한 독특한 화술은 이혜영만의 특징이자 개성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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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뮤지컬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이혜영은“연극 무대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느끼게 됐다”며“밤을 새워가며 대본 공부하고 역할에 몰입하는 시간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하지만 이는 종종 독화살로 되돌아온다. 카리스마 넘치는 건 좋지만 다른 배우들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극의 색채를 죽인다는 평도 있다. 지난해 국립극단에서 선보인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그랬다. 아들과 예술적 견해 차이로 번번이 부딪치는 배우 아르까지나 역을 맡았는데, 그녀 위주로 시선이 쏠려 극 전체로 봐서는 균형 감각을 잃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일부 평론가는 "연기를 못하는 게 아닌데도 혼자 겉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고 평했다.

    이번 메디아를 맡으며 그녀는 과거 비판을 꽤 의식한 듯싶었다. 인터뷰 초반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호흡'이었다. 메디아는 잘 알려졌듯 고대 그리스 신화 중 최고의 악녀로 꼽힌다. 사랑하는 이아손이 출세를 위해 크레온 왕의 딸과 결혼하려 하자 광기를 폭발시키며 크레온 왕 부녀는 물론 자신의 아이들까지 죽인다. 줄거리만 봐도 낭자하게 흘러넘치는 독기 서린 피. 하지만 로버트 알폴디의 연출은 '메디아 단독'보다 15명의 코러스와 또 한 명의 유모를 그녀 주변에 세웠다. "메디아가 무대에 혼자 서 있는 시간은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예요. 코러스와 저와의 호흡이 메디아의 완성이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극을 보고 나면 이혜영 혼자였더라도 넓은 무대를 다 채울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코러스에 이입해 메디아를 비난하거나 옹호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이혜영의 매력에 빠져 그녀와 동화되는 게 더 빨라 보인다.

    의상 디자이너 진태옥이 만든 새빨간 저지 드레스를 입고 시선을 장악하더니 무대 한가운데서 내려오는 대형 원통에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가 칼을 휘두를 때는 객석 여기저기서 '헉'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메디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출에 관해선 반응이 엇갈리지만 이혜영의 연기에 대해선 팬들은 물론 평론가들도 대체로 호평이다. "메디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배우가 아니었을까"(허순자) "워낙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딱 맞는 작품을 만나면 무대에서 화려하게 꽃피어난다"(김명화) 등이다.

    이혜영은 "나를 바꿔보려 노력해봤지만 결국은 나였다"고 했다. 이윤택 연출의 '문제적 인간, 연산'(1996)에서 장녹수를 맡은 이야기를 했다. "'연희단거리패'처럼 질펀하게 나 자신을 놓고 싶었는데 결국은 원래 '나'가 나왔죠. 영화 '길'의 젤소미나 역을 맡는다 해도 (펠리니 감독의 뮤즈였던) 줄리에타 마시나 느낌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제가 만들어 내는 인물은, 그래요. 아주 좋거나 아주 싫죠. 그래서 날 찾는 게 아니겠어요?(웃음)"

    그는 요즘 공연 끝나고 밤늦게 들어가도 새벽 6시 20분에 일어나 중학생 아들을 챙긴다. 남편은 뭐라고 했을까. "키스신 나온다니 안 보는 거예요. 결혼 이후엔 키스신 포옹신 한번 안 찍었어요. 상대에 대한 예의이자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으니까요. 근데 '갈매기'때부터 연극이 제게 사랑 이야기를 하네요. 숨겨왔던 본능이 폭발했달까요? 작품이 부른다면, 전 무대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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