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국선 대통령·국회 모두 권력 줄여야"

    입력 : 2017.03.06 03:03

    ['한국통일의 정치와 헌법' 펴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

    통일 이후 가정해 헌법안 마련
    제1조 '모든 사람은 존엄권 가져'… 국가 체제보다 기본권 앞세운 것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됐느냐고? 그게 다 헌법 무시했기 때문"

    "한반도가 지금 엄청난 위기 상태 같지요? 하지만 통일은 기적처럼 갑자기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우왕좌왕하다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원로 법학자 김철수(84) 서울대 명예교수의 목소리는 느릿하면서도 묵직했다. 4년의 집필 작업 끝에 그는 지난주 700여 쪽에 달하는 새 연구서 '한국통일의 정치와 헌법'(시와진실)을 펴냈다. '그가 쓴 책을 읽지 않고 고시에 붙거나 법학자가 된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국내 헌법학의 권위자인 김 교수는 이 책에서 남북통일 이후를 가정하고 '통일 헌법'의 틀을 짰다.

    서울 상도동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통일 한국의 정체(政體)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국가적·정치적 권력을 지니고 총리는 일상적·행정적인 권력을 갖게 하도록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회 해산권을 갖게 하고, 총리는 다수당의 대표가 맡도록 해 서로 견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죠."

    서울 상도동 연구실에서 만난 김철수 교수는 “통일이 되면 더 좋은 체제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도 책을 쓴 이유 중의 하나”라며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서울 상도동 연구실에서 만난 김철수 교수는 “통일이 되면 더 좋은 체제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도 책을 쓴 이유 중의 하나”라며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흔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을 하지만, 그가 보기엔 '제왕적 국회의원'도 큰 문제다. "도대체 한번 국회의원이 되면 견제 장치가 없지 않습니까? 자기들끼리 제대로 징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상·하 양원으로 나눠 서로 감시하게 하고, 국민이 직접 의원을 소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 역시 전문 분야별로 4~5개 정도로 나눔으로써 '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하지만 통일 헌법에서 그가 더 비중을 두는 곳은 국민의 기본권이다. 현행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지만, 그의 통일 헌법안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엄권을 가진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김 교수는 "국가 체제보다도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 권리, 공개청구권, 생명권 같은 기본권 관련 조문 60여 개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외국의 통일 헌법 사례를 샅샅이 연구한 그는 "통일 헌법이 화합과 포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과거 베트남의 통일 헌법은 남베트남 출신 인사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막지 못했습니다. 예멘의 통일 헌법은 재(再)분열의 요소를 방치하고 있었고요." 독일은 통일 과정에서 서로 헌법 질서를 준수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생각하는 통일 후의 '연방제'는 인구 비례에 의해 남쪽에 5~6개, 북쪽에 3~4개의 주(州)나 도(道)를 둬 분권형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다. 북한에는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실험이 된다.

    김 교수에게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를 물었다. "그게 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했기 때문이에요." 반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였다. "전직 대통령 중에선 '헌법 그까짓 것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한 사람도 있었지 않습니까. 지금 대통령이 '돈 1원도 안 먹었다'고 하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일하지 않은 게 문제지요. 집무실에 나가지 않고 사람을 만나지 않은 것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대통령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입니다."

    그는 "국회도 정말 한심하다"고 했다. "대의(代議)라는 개념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요. 국민의 대표를 뽑아 입법권과 국정 감시를 위임한 건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정치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김 교수는 "앞으로 2~3년이 한반도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헌법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대립을 피하고 통합을 이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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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김철수 명예교수는 어떤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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