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거대한 量과 속도로 다가오는 언어… 그 앞에서 우린 '무장해제' 됐다"

    입력 : 2017.03.06 03:03

    [조선일보 創刊 97주년 대담… '한글의 탄생' 저자 노마 히데키씨]

    "'세계 최고' 같은 수식어 집착, 思考 정지 상태에 빠져…
    문자체계는 상품이 아닌데 등급 매기는 것은 非이성적"

    "세종 시대 王과 신하의 논쟁, 오늘날 현대 언어학 수준…
    그 시절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장면 찾아볼 수 없어"

    "언어는 거대한 양(量)으로 다가온다. 언어가 바이트(byte·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로 계량되는 시대다. 양뿐만이 아니라 SNS 등을 통해 엄청난 속도를 갖고 있다. 그 양과 속도 때문에 언어를 다듬고 곱씹어보고 사고하는 게 몹시 어려워졌다. 인류사상 처음으로 '언어의 위기' 단계를 맞고 있다."

    대담이 두 시간을 넘어설 무렵, 노마 히데키(野間秀樹·메이지가쿠인대학 객원교수)씨는 심중에 담아둔 말을 꺼냈다. 오타쿠처럼 언어 연구에 매달려온 그가 이런 결론으로 이끌 줄은 예상 못 했다. 나는 요즘 한국적 상황을 떠올렸다.

    "언어 앞에서 우리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됐다. 언어가 오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처리할 뿐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며 따져볼 수가 없다. 언어로 소외당하고 상처를 입는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언어가 반대로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한때 베스트셀러가 됐던 '한글의 탄생'의 저자다. 그 책으로 아시아·태평양상 대상과 주시경학술상을 받았다. 그 뒤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편저했고(일본 파피루스상 수상), 최근에는 '한국학 총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젊은 날 그는 예술가였다. 동경교육대학(쓰쿠바 대학) 예술학과를 중퇴한 그는 그림, 판화, 사진, 설치미술 등 현대미술을 해왔다. 국제판화 비엔날레와 '한일 젊은 작가 7인회' 교류전에 참여했고, 현대일본미술전 가작상도 받았다. 이런 그가 어떻게 일본에서 한국어학자로 변신했을까.

    "대학 시절 한국어와 인연이 닿았다. 프라이버시와 관계돼 구체적으로 답할 순 없다.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고만 이해해달라. 그 시절 한국 기독교방송 아나운서들이 녹음해 만든 카세트테이프 교재가 처음 나왔다. 이를 입수하면 맨 먼저 여러 개씩 복사했다. 왜냐하면 100번 이상 반복해 들으면 테이프가 늘어져 망가지기 때문이다. 죽어라 들었다. '섀도잉(shadowing)' 방식이라고, 녹음을 듣는 동시에 따라서 말했다. 공부할수록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는 미술 작업을 병행하면서, 서른 나이(1983년)에 도쿄외국어대 조선어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학부·석사 논문이 모두 일본 언어학회지에 게재될 만큼 촉망을 받았다. 지도교수가 그에게 대학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라고 했다.

    "예술이냐 연구냐, 진로 문제에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계산은 없었다. 그 계산을 했으면 지금까지 이런 고생을 안 하고 있을 거다. 그냥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했다.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거의 비슷했다."

    노마 히데키씨는 “정치는 삶의 전부가 아닌데도 우리의 삶과 모든 관계까지 덮어버린다”고 말했다.
    노마 히데키씨는 “정치는 삶의 전부가 아닌데도 우리의 삶과 모든 관계까지 덮어버린다”고 말했다. /도쿄=최보식 기자

    ―'한글의 탄생'(2010년)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쓰인 한글에 관한 대중 학술서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때까지 일본인은 한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일본 가나와 비슷하다거나 한글 형태가 귀엽다는 인상, 한글이 가진 지적 재미나 풍요로움에 대해 전혀 몰랐다."

    ―한글에 대해 '누구를 위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고, 나를 이렇게 발음해 달라는 점을 스스로 밝힌 세계 유일의 문자'라고 의미를 부여했는데?

    "한국인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일본인 학자가 다른 언어로 그렇게 하니까 새롭게 보인 것이다. 사실 내 책에서 새로운 관점이 있다면 훈민정음 반대 상소를 올렸던 최만리(崔萬理)의 '사대주의'에 관한 것이다."

    ―집현전 부제학(副提學)인 최만리는 '언문을 만든 것은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 부끄럽다'며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 부당하다고 했는데?

    "이 때문에 최만리는 '악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상소문에서 '용음합자(用音合字·음으로써 글자를 만듦)'라며 창제 원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높은 지적 수준을 보여준 대목이다. 세종과의 핵심 갈등은 바로 언어론의 차이였다. 사대주의가 아니었다."

    ―무슨 뜻인가?

    "당시 왕과 신하는 오늘날 현대 언어학 수준의 논쟁을 벌였다. 그 시절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장면을 찾아볼 수 없다. 최만리는 다른 형태의 언어(훈민정음)는 한자로 축적된 모든 지식과 향후 지적인 활동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을 우려했다. 사회체제를 바꾸는 혁명(革命)처럼 위험하게 본 것이다. 세종은 파직한 최만리를 며칠 뒤 용서한다. 만약 정치 문제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뒷날 최만리가 '사대주의자'로만 매도된 이유는?

    "일제강점기 한글학자 최현배 같은 분에 의해서였다. 일본 제국주의와 중국 사대주의가 겹쳤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것만 보고 있으면 안 보이게 되는 것이 많다."

    ―세종 시대에 살았다면 노마 선생은 어느 노선을 택했을 것 같은가?

    "이런 어려운 질문은 처음이다. 세종의 지성(知性)과 그 진지하고 뜨거운 뜻 앞에서 도저히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글에 대해 '소리 중에서 의미와 관여되는 모든 요소에 분명한 형태를 준 것은 현대 언어학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자라고 자부할 만한가?

    "'세계 최고' 같은 수식어에 집착하면 사고(思考) 정지 상태에 빠지기 쉽다. 문자체계는 스포츠도 아니고 상품도 아니다. 순위나 등급을 매기는 것은 비이성적이다. 어떤 문자든 그걸 쓰는 사람에게는 가장 귀한 문자가 될 수 있다. '한글은 과학적'이라는 표현도 좀 애매하다. 널리 쓰이고 있는 문자치고 '비과학적인 문자'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글과 다른 문자들의 차별적 특성은 뭔가?

    "한글은 창제 과정을 알 수 있는 희귀한 문자체계다. 가령 자음(子音)은 발성기관에서 형태를 찾아내 이론화했다. 논리의 결벽성이랄까, 논리 자체가 그대로 형태가 된 것이다. 규격화된 글자체로 백성들이 작대기로 땅바닥에 쓸 수 있다. 오히려 붓으로 쓰기에 쉽지 않다. 산수화가 유행하던 시절에 마치 컴퓨터 그래픽이 등장한 것과 같다. 실제 한글은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로서 다양한 가능성이 많이 열려 있다."

    ―미적(美的) 관점에서 한글과 일본글의 차이는?

    "질감(質感)이 다르다고 할까. 시각적으로 한글은 단일하다. 여러 나라의 문자들이 단일한 편이다. 반면 한자·가타카나·히라가나 등이 섞인 일본글은 복합적이며 다색적(多色的)이다."

    ―효용성을 비교하면?

    "그런 생각은 위험하다. 문자체계만으로 효용성을 판단할 수 없다."

    노마 히데키씨와 최보식 선임기자 사진

    ―'한글의 탄생'을 출간하고 몇 년 뒤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편저했는데?

    "문자가 전달하는 지식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의 예술이나 영화, 드라마, 노래, 배우, 가수 등 대중문화는 일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과 '지(知)'라는 단어가 붙어서 논의된 적이 별로 없었다."

    ―'한국의 지를 읽다'는 한·일 지식인들이 각자 추천한 책들의 소개로 편집됐다. 작업 과정에서 이들에게 '한국의 지(知)와 만나게 해준 책을 1~5권 추천하고 생각을 적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응답률은 고작 20% 정도였다. 일본어권 필자들은 자신은 한국의 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그는 다시 편지를 보내 한국 지식인 46명과 일본 지식인 94명의 답변을 받음). 세계의 지(知)나 유럽의 지에 관한 책을 다섯 권 추천해달라면,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등을 금방 추천한다. 하지만 한국의 지에 대해 물으면 대답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한국의 지는 없는 건가. 실제로 없다면 상관없다. 있는데도 모르면 억울하지 않은가."

    ―'모른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일본어권에서 한국의 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한국의 예술과 대중문화는 향유되고 평가돼온 데 비해, 일본에서 한국은 '지'라는 단어와 함께 논의되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일본 지식인에게 한국의 지(知)는 관심을 기울일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인가?

    "일본 지식인은 중국 고전은 읽었지만 한국 고전은 읽은 적이 없다. 현대 저작물도 읽지 않는다. 한국의 수준이 낮아서 그런가. 내가 만났던 한국 지식인들과의 대화는 지적인 흥미와 깊이가 있었다. 결코 일본 지식인들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지식인 사회의 풍토 차이는?

    "한국 풍토는 어떻고 일본은 어떻다 하는 식의 비교는 옳지 않다고 본다. 국가를 먼저 꺼낼 이유가 없다. 한국 지식인 중에는 대단한 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 개인의 문제다. 한·일 간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도 '한국은 어떻고 일본은 어떻다'는 식의 접근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관계는 개인에서 출발해야 한다."

    ―독도·위안부 등 한·일 간 갈등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서로 가까이 붙어 있는 나라치고 정치 외교적으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정치권은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린다. 아베 정권이 '민족배외주의(民族排外主義)' 화살을 던지는 것도 그렇다. 이 화살로는 일본 내 극우와 극좌 세력까지 모두 꿸 수 있다. 굉장히 강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치적인 얘기를 하지 말자. 독도·위안부에 대해 말을 꺼내는 순간 다른 얘기는 다 날아가버린다."

    ―이런 현안을 피할 수가 있겠나?

    "정치가 화제가 되면 사람들은 인문학적인 사고(思考)를 중지하게 된다. 이 판단 정지, 사고 정지는 이성적인 삶에서 아주 위험하다. 정치는 삶의 전부가 아니다. 전부가 아님에도 종종 우리의 삶과 모든 관계까지 덮어버린다. 우리를 무릎 꿇게 한다. 정치를 떠나서도 지금과 같이 한글에 대해 깊이 논의할 수 있지 않은가."

    어제는 조선일보 창간(創刊) 97주년이었다. 신문 지면을 채워온 것은 한글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일본인 한글학자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홍명희의 '임꺽정'을 당시 표기로 읽었다. 조선일보라는 이름은 그 기억과 함께 있다. 조선일보는 가능한 한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 삶을 비추어주고 그 삶의 가능성을 넓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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