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성 베이징 특파원

롯데와 한국에 대한 보복 구호로 도배된 요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보면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지난 4일 밤 이런 분위기와는 딴판인 동영상 하나가 웨이보에 올라왔다.

어느 겨울의 바쁜 출근길, 한국 경기도 판교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찍은 몰래 카메라 영상이었다. 양복 차림의 젊은이가 "첫 면접 날인데 넥타이 매는 법을 모르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제 목에 넥타이를 걸어 매듭을 만들어 건네주는 아저씨, 넥타이를 매준 뒤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파이팅!"을 외치는 백발 할아버지, "추운데 외투도 안 입었느냐. 나는 안 춥다"며 자신의 핫팩을 꺼내주는 초로의 아주머니 등 낯선 청년을 가족처럼 챙겨주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모습이 가슴 뭉클하다.

동영상엔 중국어 자막이 있어 중국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눈물 난다' '정부는 개판인데 인민은 훌륭하네' '한국놈들을 욕하지만 만약 중국이었다면 모두가 무관심했을 것'이라는 등 댓글 대부분이 한국에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동영상을 올린 중국 네티즌은 '나도 롯데와 사드를 반대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인위적 '민의(民意)'가 아닌 자연스러운 중국의 민심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3일 중국 장쑤(江蘇) 성 난퉁(南通)시 공안국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반 롯데 시위대 모습. 시위대는 '롯데는 중국에서 나가라' 등 과격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일본인들은 더 멋있다'는 식의 댓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심지어 '역시 일본인이 최고'라며 동영상의 배경을 일본으로 혼동한 이도 있었다. 일본에 대한 중국인들의 무의식이 무심결에 드러난 것이다. 중국에 살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거의 매일 항일 드라마가 방영되고 대일(對日) 경제 보복만도 여러 번 했던 이 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에 대해 '대단하다(厲害)'는 말을 달고 산다는 점이다. 중국의 한 저명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한국 가면 질 좋은 김과 전기밥솥을 살 수 있어 좋지만 일본에 가면 수준 높은 사회 분위기를 맛볼 수 있어 좋다"고 말할 정도다. 자신들은 도저히 넘볼 수 없고, 한국인보다도 한 수 위인 일본의 국민성, 한마디로 그들의 '품격'을 높이 평가하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만난 일본의 한 국제정치 전문가는 중국의 보복을 두고 "한국은 처음 겪어봐서 당황스럽겠지만 중국과 수교 45년째인 일본은 다반사로 겪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상대한 경험이 많은 일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 정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칼을 빼들 때마다 일본도 경제적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안보에 관한 한 한 치 양보도 없다는 원칙에서 일본 정부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결과적으로 진 것은 일본이 아닌 중국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원칙도 중국의 위협 앞에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정부를 지지하는 일본 국민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일본인은 우리보다 몇 수 위'라는 생각이 중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한, 중국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반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덩치 큰 중국이 칼을 빼들어도 그런 국민이 있다면 잠시 힘들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 중국의 보복이 거세다. 현대차가 부서지고 중국 식당에선 한국인이 쫓겨났다. 그래도 우리는 냉철해야 한다. 국민이 한 수 위면 질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