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가 필요합니다, '침묵의 교회' 평양교구"

    입력 : 2017.03.03 03:13

    [교구 설정 90주년…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 황인국 몬시뇰]

    평양 출생, 관후리성당서 세례… 북한 선교 앞장설 사제 양성

    18일 기념미사… 사진전도 열려
    "구글로 고향땅 보곤 해… 100주년은 평양서 맞고 싶어"

    "지금도 신앙을 버리지 않은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북한 할아버지들 중엔 남한 신부님을 만나 악수할 때 손바닥에 살며시 십자가를 긋는 분도 있어요. 평양교구 설정 90주년을 맞아 남한의 신자들과 국민이 통일과 북한의 종교 자유를 위해 기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평양교구 설정 90주년 기념 미사(18일 오전 11시 명동성당)와 사진전(14일까지 서울대교구청 지하 갤러리1898) 등 행사를 준비하는 황인국(81) 몬시뇰의 직함은 무려 열한 자에 이른다. '천주교 평양교구장 서리(署理) 대리(代理)'. 이름의 길이만큼 짙은 슬픔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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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국 몬시뇰이 광복 전 평양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관후리성당의 모형을 앞에 두고 설명하고 있다.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인 황 몬시뇰은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부설 유치원을 다녔고, 복사(服事) 생활을 했다. 황 몬시뇰 뒤로 보이는 서랍들엔 평양교구 90년의 역사 자료들이 담겨 있다. /조인원 기자
    평양교구는 1927년 서울대목구(代牧區)에서 분리돼 평양지목구(知牧區)로 독립해 미국의 메리놀외방선교회가 맡았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日帝)는 적국 출신인 메리놀회를 1943년 추방했다. 광복이 되자 이번엔 공산 정권의 탄압이 시작됐다. 1943년 당시 평양교구는 성당 19곳, 공소 106곳에 2만8400여명의 신자가 있었다. 그러나 1949년 홍용호 주교가 공산 정권에 납치·실종된 이후 6·25 때까지 모든 사제와 수도자가 납치됐다. 현재 평양교구는 공식적으론 사제도, 수도자도, 신자도 없는 '침묵의 교회'다. 1975년 김수환 추기경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난 황 몬시뇰에게 사제의 길은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천주교와의 인연은 고조부 때부터. 고조부는 평안남도 평원군 한천의 자기 땅을 내놓고 공소(公所·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공동체)를 짓고 회장을 지냈다. 황 몬시뇰은 주교좌성당인 관후리성당 부속 유치원과 성모초등학교를 나왔다. 홍용호 주교의 미사 때 복사(服事)를 서기도 했던 황 몬시뇰은 공산 정권의 탄압도 생생히 목격했다. 공산 정권의 요주의 인물이었던 부친은 1·4 후퇴 때 월남하면서 피란 길에도 사리원·개성 등을 거치며 가능하면 성당에서 잠을 잤다. 남한에서 정착한 곳도 대전의 대흥동성당. 성당 창고를 개조해 14년을 살았다. 사제와 신학생들 틈에서 성장한 황인국은 자연스럽게 사제의 길을 택했다. 사선(死線)을 넘나들 때 그를 지켜준 것은 묵주 기도였다.

    황 몬시뇰은 1964년 사제가 된 후 삼각지·전농동·돈암동·잠실·한강성당 등의 주임신부와 동서울 지역 담당 교구장 대리를 거쳐 2004년부터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를 맡고 있다. 그와 평양교구 사무국은 평양교구 관련 사료 수집과 증언 채록을 통해 홍용호 주교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시복(諡福) 준비를 하고 있다. 또 2009년 정진석 추기경의 제안으로 통일 이후 북한 선교에 앞장설 선교 사제도 키우고 있다.

    지난 2014년 사목 일선 은퇴 후에도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를 맡고 있는 그도 팔순이 넘었다. "'평양교구 100주년 행사는 평양에서 하자'고 말은 합니다만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라고 말한다. 윤공희 대주교를 비롯해 지학순 박정일 이기헌 주교와 정의채 최창화 몬시뇰 등을 배출했지만 생존한 평양교구 출신 사제는 이제 14명으로 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 생각은 더욱 간절해 수시로 구글 위성사진을 검색한다. "구글을 보면서 평양 우리 집에서 한천의 할아버지 댁까지 길을 따라가 보곤 합니다. 지금도 눈에 선해요. 얼마 전까진 할아버지댁 자리가 공터였는데 최근엔 건물이 생겼더군요." 지난 2010년엔 피란 60년을 맞아 12월 5일부터 이듬해 1월 22일까지 임진각에서 대전 대흥동성당까지 도보 여행도 했다.

    그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하루 두 번씩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보내주는 문자메시지를 보면서 관후리성당과 중강진성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올해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입니다. 성모님이 소련의 종교 자유에 대한 기도를 들어주셨듯이 남북통일의 간절한 기도도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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