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할리우드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 가수 빅토리아 베컴의 감탄을 자아낸 곳. 해외 명사가 한국에 오면 한 번은 방문하고, CNN이 2011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이며, 놀랍도록 감탄스럽다'라고 보도했던 명소. 2010년 11월 주요 20국 정상회의 영부인 오찬, 2016년 3월 130년 만의 한·불 전략대화가 열린 장소.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은 정미숙(70) 관장의 50년 열정이 만들어 낸 타임머신이다. 정 관장은 8선 의원을 지낸 정일형 전 외무부장관과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박사의 딸이다.
모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가구 보는 눈썰미를 갖게 됐다는 정 관장은 나대지였던 6600㎡(약 2000평) 땅에 한옥 10채를 옮겨와 18·19세기 목가구 2550점을 채워넣었다. "(여기저기 버려진) 가구가 나를 향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는 것이 고가구 수집 이유였다. 박물관이 들어선 땅은 시아버지이자 국내 원양어업의 개척자로 불리는 고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에게서 받았다. 정 관장은 1993년부터 15년을 투자해 언젠가 박물관을 열겠다던 꿈을 이뤘다.
가구박물관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수백년 전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창경궁 전각을 되살려 지은 궁집이 제일 먼저 손님을 맞는다. 정 관장의 시아버지가 1960~1970년대 정부가 궁 유원지화 사업을 하면서 민간에 매각한 기둥과 기와를 사들였다. 한옥은 못이나 접착제를 쓰지 않고 레고 블록처럼 끼워서 조립할 수 있기에 복원이 가능했다. 기와도 한 장씩 떼어 번호를 매겨 다시 올렸다.
궁집 옆으로 빙 둘러 돌아가며 행랑채, 정자, 회랑채가 이어진다. 회랑채에선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2012년 작은 콘서트를 열었다. 맞은편 곳간채는 명성황후의 사촌이 마포에 소유했던 것이다. 어지간한 여염집 민가보다 넓어 당시 민씨 일가의 권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그 옆 부엌채 양쪽 옆구리엔 연기가 빠져나가는 창이 붙어 있다. 사각형 창 앞에는 사각 우물, 원형 창 앞에는 둥근 우물을 둬 마주 보게끔 했다.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가 눈을 떼지 못하다 스케치북에 그려갔다고 한다. 뽀얀 마사토가 깔린 마당을 앞에 둔 사대부 집은 순정효황후가 조선왕조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가례(嘉禮)를 올리기 전에 살았던 곳이다. 안방 창문 너머로 남산과 성곽 길 풍경이 아스라하게 이어진다.
박물관 안엔 장인의 지혜가 느껴지는 가구가 많다. 1시간 예정으로 왔다가 3시간을 머물렀던 브래드 피트가 탐을 냈다는 오동나무 책함이 대표적이다. 책을 넣어 하나씩 들고 다닐 수 있고, 여러 개를 쌓아올리면 책장이 된다. 피트는 "수백년 전 가구가 이토록 모던하다니 놀랍다"며 "어이구 세상에나(Oh, my god)"를 몇 번이나 외쳤다고 한다.
옷을 한 벌씩 넣어두던 관복장(官服欌)에선 옛 주인의 취향이 드러난다. 옥단추 2개를 위아래로 달거나 난(蘭)을 그려넣어 멋을 냈다. 휘가시나무, 단풍나무 등의 재질을 고스란히 드러낸 장롱은 비례와 균형미가 빼어나다. 유달리 길고 쭉 뻗은 촛대는 인체를 가늘고 길게 표현한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박물관 박중선 이사는 "조상들은 생활이 예술이었다"며 "자연이 집을 안고, 집이 가구를 안고, 가구가 사람을 안았던 유기적인 미를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