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전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오늘, 삼일절에 서울 도심 광장이 둘로 쪼개진다. 탄핵 찬반 세력이 각자 대규모 집회를 열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기로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두고 양측의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집회와 행진 장소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찰은 집회 현장에 차벽(車壁)을 치고 경찰 1만6000여명을 투입해 충돌을 막기로 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1일 오후 2시부터 8시까지 서울 세종대로사거리부터 남쪽으로 서울광장에 이르는 구간에서 제15차 태극기 집회를 개최한다.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도 오후 5시부터 8시 30분까지 광화문광장에서 18차 촛불 집회를 연다.

세종대로사거리는 광화문광장과 맞닿아 있다. 서울 광화문에서 덕수궁 앞 서울광장까지 1.2㎞ 구간을 절반으로 뚝 잘라 상대 진영을 바로 코앞에 두고 남쪽에선 태극기 집회가, 북쪽에선 촛불 집회가 열리는 것이다. 탄기국은 500만~700만명, 퇴진행동은 100만명 이상이 참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탄기국은 이날 집회에서 처음으로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하기로 했다. 청와대 방면 행진은 그동안 퇴진행동 측의 주요 행진 코스였는데, 탄기국이 지난 1월 말 행진 신고를 먼저 해서 선점(先占)한 것이다. 탄기국은 오후 2시 30분쯤부터 행진을 시작해 청와대에서 200m가량 떨어진 신교동사거리까지 간다. 퇴진행동도 오후 7시부터 탄기국 행진 코스의 바로 옆 도로를 통해 청와대 쪽으로 향한다. 당초 경찰은 양측의 충돌을 우려해 늦게 신청한 퇴진행동의 행진을 불허했지만, 법원은 28일 "행진 코스와 시간이 겹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허용했다.

탄기국과 퇴진행동 모두 "평화시위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양쪽 집회 참가자들 간에 몸싸움 같은 작은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집회를 하루 앞둔 28일 탄기국과 퇴진행동 홈페이지에는 "삼일절 집회엔 몽둥이 하나 들고 나오자" "말이 안 통하는 X들은 때려잡아야 한다" 등 과격한 글이 수십 건씩 올라왔다.

신영무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는 "탄핵 심판이 임박하면서 태극기와 촛불 세력이 마치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 직전인 상황"이라며 "양쪽 모두 '혁명'이나 '불복' 같은 과격한 발언을 자제하고 헌재 결정에 승복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98돌을 맞는 3·1절에 서울 도심‘광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놓고 또다시 두 개로 갈라진다.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를 기준으로 탄핵 반대 진영은 남쪽 청계광장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찬성 진영은 북쪽 광화문광장에서 각각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탄핵 찬성 단체(위쪽)와 탄핵 반대 단체(아래쪽)가 이중으로 설치된 경찰 차벽을 사이에 두고 집회를 하는 모습이다.

탄기국은 세종대로사거리에 무대를 설치하기로 했다. 퇴진행동은 광화문광장 북단에 무대를 설치한다. 양측 무대 간 거리는 500m에 불과하다.

탄기국은 세종대로사거리를 축으로 동쪽 동대문과 남쪽 숭례문까지 총 4.8㎞에 달하는 구간에 집회 신고를 했다. 곳곳에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 약 100개를 설치하고,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집회 상황을 실황 중계하기로 했다.

퇴진행동 역시 곳곳에 스크린과 집회 차량을 배치하기로 했다. 퇴진행동 측은 삼일절이라서 태극기를 가지고 나올 참가자들도 있을 것으로 예상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태극기에 부착해 달라고 당부했다.

태극기 집회 측은 오후 2시 30분쯤부터 청와대와 헌재 청사 방면 등 5개 코스로 1시간가량 행진한 뒤 세종대로사거리에 재집결할 계획이다. 청와대 방면 행진은 자하문로를 이용한다. 퇴진행동은 오후 7시부터 청와대 방면 1개 코스로만 행진하는데, 자하문로의 이면도로 격인 효자로를 지난다.

경찰청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반 단체 모두 '총력 투쟁'을 공언하고 있는 데다 1일 집회에서는 양측이 이전보다 훨씬 가깝게 접근하기 때문에 충돌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탄핵 심판 선고가 다가오면서 집회 현장에서 폭력적인 행동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야구방망이나 휘발유, 횃불을 들고 나오는가 하면 헌재 청사에 난입하려 하거나 경찰을 폭행하는 일도 일어났다. 경찰은 세종대로사거리 등 두 집회의 경계 지점에 차벽을 쳐서 양측 접촉을 최대한 막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사회 원로들은 양쪽 모두 흥분을 자제하고 평화롭게 시위를 이어가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격화되는 촛불, 태극기 집회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말 그대로 '무법전치'가 되는 느낌"이라며 "탄핵 심판과 관련한 모든 것은 헌법에 따라 진행하고 정치권과 국민은 차분히 그 결정을 기다리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는 "1946년 삼일절 때도 신탁통치 문제로 민족진영과 좌파 진영이 갈라져서 따로 기념식을 열었던 상황이 떠오른다"며 "결국 두 세력이 서울 한복판에서 충돌해 대규모 유혈 사태로 번졌고 찬탁·반탁으로 확대되며 분단까지 이어진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국민이 서로의 입장을 경청하고 이해하며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