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미어터지는 수강신청, 늙고 병든 복학생, 안 생기는 여자친구 등 다방면에서 문화충격을 경험한다. ‘일체형 책걸상’도 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이름 그대로 책상과 의자가 한 덩어리인 가구로,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보기 어려운 물건이지만 대학에서는 사용 않는 학교를 골라내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널리 쓰인다.

문제는 이게 사람 몸을 배려해 만들어진 물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책상과 의자라면, 책상이 멀리 있다 싶으면 의자를 당겨 앉으면 된다. 그런데 일체형 책걸상에서는 책상과 의자 간격을 좁힐 수가 없다. 몸을 기울여 구부정하게 앉거나,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야 한다. 아니면 일체형 책걸상에 바르게 앉아도 글씨가 잘 보이도록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 훌륭한 시력을 유지하는 노오력을 해야 한다. 여하간 일체형 책걸상과 밸런스가 완벽히 맞는 축복받은 육신으로 태어나지 못한 이상, 여기에 똑바로 앉아 공부할 방법이 달리 없다.

사실 애당초 앉는 사람 입장을 배려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2012년에 출원된 일체형 책걸상 특허 실용 내용을 보면 '본 발명은 테이블 및 책상의 상판을 회전축을 통해 수직으로 회동시켜 간단하게 접거나 펼 수 있도록 해 보관 및 이용 시 편의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판 접이 구조에 관한 것'이라고 돼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접고 펴기가 간단해 보관이 편한 게 일체형 책걸상의 장점이라는 소리다. 여러분 허리의 안녕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다.

의학계 역시 일체형 책걸상의 변태성을 인정하고 있다. 대한척추외과학회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문성환 연세대 의대 교수는 "일체형 책걸상 때문에 너무 자세를 숙이거나 목을 굽히게 되면 피로감이 커지고 학습 효율이 떨어진다"고 했다. 공부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도구가 되려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공부하기 싫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시험 응시생이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

그렇다면 대학은 왜 이런 끔찍한 혼종을 즐겨 쓰는 것일까. 한 국립대 소속 단과대 시설관리자는 "대학 건물을 지을 때부터 설계를 일체형 책걸상에 맞게 해서, 보통 책상과 의자를 넣으면 공간 활용의 효율이 떨어진다"며 "책상과 걸상을 따로 사면 일체형을 쓸 때보다 돈이 30~100% 정도 더 드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결국 자본의 논리가 학생 등골을 부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체형 책걸상을 쓴다는 주장도 있다. 한 대학교 홍보담당자는 "초·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교에서는 학회나 동아리 행사 등에 쓰려 학생들이 강의실 책걸상을 임의로 가져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책걸상이 분리돼 있으면 이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책상과 의자를 쇠사슬로 묶거나 4관절 자물쇠로 엮어버려도 해결될 문제다. 차라리 서서 공부하는 게 낫겠다 싶을 생각이 들게 하는 흉악한 물건을 굳이 쓸 이유로는 불충분하다.

세상 일이 대개 그렇듯, 역시 결국엔 돈 때문에 사람이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쓰기엔 사람을 너무나 괴롭게 만드는 물체다. 목뼈와 척추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제껴두고라도, 대부분 책상으로 쓰기엔 크기가 너무 작다. 전공책과 노트 하나씩만 깔아두면 필통 놓을 자리도 없는 게 보통이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일체형 책걸상 저주글.

학교 사정이야 어찌 됐건, 전국 학생의 원한을 빨아온 사악한 물건을 수십년간 별 개선 없이 쭉 쓴다는 건 문제가 있다 봐야 한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지만 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어야 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세종대나 서울시립대 등 일부 대학에서 일체형 책걸상을 추방하는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실 돈 내며 공부하는 학생들 의견을 돈 핑계로 학교가 무시해 온 것부터가 기묘한 일이었다. 어차피 40㎏ 완전군장이나 장차 낳을 토끼 같은 자식에게 입힐 외제 패딩 등, 향후에 등골을 부숴먹을 만한 것들은 일체형 책걸상 아니어도 차고 넘친다. 굳이 대학 시절부터 조기파쇄를 하고 갈 이유가 딱히 없다. 보다 많은 학교가 학생의 고충을 헤아려 이들이 등뼈를 온전히 보존하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