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입력 : 2017.02.25 03:02

    [마감날 문득]

    '헬 오어 하이 워터(Hell or High Water)'라는 미국 영화를 봤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라는 뜻이다. 홍상수 차기작 제목 후보감이다. 우리말 제목은 '로스트 인 더스트(Lost In Dust)'였다(젠장, 우리말 제목이 아니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라는 영화 이후 이렇게 재미있는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미국의 저 밑 남쪽(Deep South) 텍사스가 배경이다. 돈 없는 형제에게 재산이라곤 부모가 물려준 농장밖에 없는데 그마저 은행에 담보 잡혀 있다. 그 땅에 석유가 매장돼 있다. 갚을 돈이 없는 형제는 그 은행 지점을 돌며 딱 대출금 갚을 만큼 은행 강도질을 한다. 은행은 고리(高利)로 돈을 빌려준 뒤 석유 묻힌 땅을 빼앗으려 하고, 형제는 그 은행을 털어 빚을 갚으려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교묘하게 섞여 있는 '오프 할리우드'라고 할까, 그런 영화였다.

    이 형제 강도를 잡으러 나선 두 카우보이 보안관이 한 스테이크 식당에 들렀을 때였다. '티본 카페'라는 간판을 단 식당에 두 사람이 들어서자 70살쯤 돼 보이는 여종업원이 다가와 묻는다. "뭐 안 먹을래(What don't you want)?" 두 사람이 "네?" 하고 묻자 종업원이 말한다. "내가 이 집에서 44년간 일했는데 그동안 티본 스테이크 아닌 걸 시킨 놈은 딱 한 명이었어. 1987년에 뉴욕에서 온 멍청이였지. 그 자식이 송어 요리가 있냐고 묻더군. 텍사스에서 망할 놈의 송어를 찾다니 말이야. 그래서 내가 묻는 거야. 스테이크에 딸려나오는 옥수수와 강낭콩 중에 뭐 안 먹겠냐고."

    두 카우보이가 "네… 그럼 강낭콩 빼주세요" 하니까 할머니는 "알았어. 티본 스테이크 미디엄 레어에…" 하면서 주문서에 메모를 한다. 젊은 카우보이가 "제 스테이크는…"하자 "물어보지 않았어"라며 그냥 주문서를 적는다. 종업원이 간 뒤 나이 든 카우보이가 말한다. "이런 집은 절대로 강도를 당하지 않을 거야."

    욕쟁이 할머니가 을지로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텍사스에도 있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런 식당에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일종의 음식 마조히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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