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닌 진짜 한국인 되고 싶었어요"

    입력 : 2017.02.24 03:06

    미국 여성 선교사 서서평 다룬 '그대 행복한가요?' 출간
    일생동안 호남서 한센인 돌봐

    14명의 한국 어린이를 입양해 키웠던 서서평 선교사가 막내로 입양한 아들 요셉을 업은 모습.
    14명의 한국 어린이를 입양해 키웠던 서서평 선교사가 막내로 입양한 아들 요셉을 업은 모습. /서빙더피플
    "저는 한국인의 '친구'가 아니라 '한국인'으로, '한국인의 일부'가 되고자 했습니다."(1930년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간호사대회 참석 후 귀국 길에 남긴 글)

    평생 독신으로 살며 이일학교(한일장신대 전신)와 부인조력회(여전도회), 조선간호부(간호사)회를 세운 미국 출신 여성 선교사 서서평(徐舒平·1880~1934)의 일대기를 다룬 책 '그대 행복한가요?'(서빙더피플)가 출간됐다. 서서평재단 대표 양국주씨가 정리한 책은 서서평 선교사가 현재의 시점에서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당시 호남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기에 이 책은 서서평 선교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100년 전 호남 선교 역사'로도 읽힌다.

    본명이 엘리자베스 셰핑(Shepping)인 서서평 선교사는 독일 비스바덴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어머니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2세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학을 공부했다. 그는 간호선교사로 1912년 광주에 파견됐다. 광주 제중원과 군산을 거쳐 서울 세브란스병원 간호학교를 지도했던 그는 1919년 다시 광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한센인촌을 챙겼다. 한센인촌 교회 신자들이 매일 한 끼씩 아낀 비용으로 제주도에 선교사를 파송할 정도로 서 선교사와 한센인들은 마음을 모았다. 또 그는 1922년 12월 26일엔 그동안 자신의 집에서 모이던 광주 지역 여성선교회를 '부인조력회'(여전도회)로, 1923년엔 조선간호부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이 됐다. 1926년부터 3년간 광주에 있던 한센인촌을 여수로 이주시켜 현재의 애양원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일장신대의 전신인 이일(李一)학교의 시작은 서 선교사의 침실에서였다. 그는 평생 13명의 딸과 아들 한 명을 입양했다. 기생집에 팔려갈 위기의 여자아이들, 소박맞은 여인 등을 거둬 교육했다. 그의 사망을 알리는 당시 신문 기사엔 "자기의 생활비까지 모두 학교 운영에 바쳐 무너진 주택을 수선할 여유조차 없었다"고 전하고 있다. 1934년 9월 그의 장례는 광주 기독교단체 연합장으로 치러졌으며 한센인 수백 명이 참석해 눈물지었다고 한다.

    편저자 양국주씨는 "책을 쓰면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온갖 수모와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오히려 그것을 사랑과 헌신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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