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 스님이 부러워하더라… '아들'에게 좋은 선물 받았다고"

    입력 : 2017.02.24 03:06

    [지하 스님과 잘 자라준 두 아들]

    40년 전 부모 잃고 고아 된 형제, 실상사 지하 스님이 거둬 키워
    형은 출가하고 동생은 노무사 돼

    책으로 사연 엮어 스님께 헌정 "우리에게 스님은 '아버지' 였다"

    "스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순서였습니다. 미리 적어둔 것을 읽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눈물범벅으로 읽고 나서 다음 차례인 형님 스님에게 넘겼는데 형님은 저보다 더 울더군요."

    다락방 오르는 계단에 지하 스님, 하림 스님, 지문조(위부터)씨가 앉았다.
    지하 스님은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2차례 지냈지만 생활은 매우 소박하다. 법당 옆방은 밥을 해주는 노보살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다락방을 개조해서 산다. 다락방 오르는 계단에 지하 스님, 하림 스님, 지문조(위부터)씨가 앉았다. /김한수 기자
    지난 22일 오후 인천광역시 연수구 법융사. 지하(77) 스님과 마주 앉은 하림(51) 스님과 지문조(47)씨는 지난해 11월 부산 미타선원에서 열었던 지하 스님의 희수(喜壽) 축하연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곁에 앉은 하림 스님도, 이야기를 듣는 지하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축하연에서 지씨는 지하 스님이 자신 형제들을 키워준 사연을 책으로 엮은 '스님의 정원'(담앤북스)을 헌정했다. 책에는 '아버지 같은 스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흠뻑 묻어 있다.

    이야기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7년 남원 실상사에 꼬마 둘이 들어왔다. 5남매 중 넷째와 막내로 각각 열한 살, 일곱 살이었던 사내아이들은 4년 전 넉 달 사이로 부모님을 잃고 각각 따로 친척집에 맡겨졌었다. 그해 실상사 주지로 부임한 지하 스님은 아이들 외할머니로부터 사연을 듣고 "데려와라. 내가 학교 보내고 키우겠다"고 했던 것. 둘은 구김살 없이 자랐다. 새벽에 형은 목탁 치고 경내를 돌며 깨우는 도량석, 동생은 종 치는 역할을 맡은 것 등을 제외하곤 또래 아이들과 다른 점도 없었다. 여름엔 개울에서 멱감고, 겨울엔 잣을 땄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동네 아이들은 설, 추석에나 새 옷을 입었지만 두 아이는 계절에 한 번씩은 장터에서 산 새 옷을 입었다.

    동생은 딱 두 번 회초리를 맞았다. 한 번은 불낼 뻔해서, 또 한 번은 거짓말해서다. 지하 스님은 "형도 한 번 맞았다"고 했지만 형은 정작 "맞은 적 없다"고 우겼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라 스님은 1년에 서너 차례는 신자들 집에 보내서 고기도 먹였다. 아이들은 스님이 경남 하동 쌍계사 주지와 경기 동두천 자재암 주지로 이동할 때마다 함께 이사하며 전학 다녔다. 스님은 여느 부모들처럼 아이들 성적 올라가면 기뻐했고, 진학 상담하고, 때론 학교에 불려가 '각서'도 썼다. 형이 군대에 갔을 땐 동생을 데리고 강원도 인제까지 '르망' 몰고 면회 가서 손수 김치찌개를 끓여 먹이기도 했다. 스님과의 동거는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10여년간 이어졌다. 지금 형은 지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부산 미타선원 평생교육원장이고, 동생은 부산에서 노무사로 일하고 있다.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 신부를 인사시키려 방문했을 때엔 "내가 네 시아버지다"라고 해서 신부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책에는 피를 나눈 부모 자식 사이보다 더 끈끈한 '부자' 이야기가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잔잔하게 펼쳐진다.

    '스님의 정원'
    40년 전 두 아이를 '아들'로 받았던 스님은 그사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을 여덟 번 했고, 종회의장을 두 번 연임했다. 지하 스님은 지난 2004년 겨울, 60대 중반의 나이에도 종회의장을 마치자마자 봉암사에서 3년, 다시 수덕사 선원인 정혜사에서 3년간 동·하안거에 들어가 하루 8~10시간씩 참선 정진해 불교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작은 절 법융사에서 지내며 조계사 등으로 법문을 다니고 있다.

    절에서 자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책으로 펴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두 사람에게 지하 스님은 '아버지'였고, 자랐던 절은 '고향집'이었다. 하림 스님과 지문조씨는 "부모 없다는 설움을 별로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은사 스님이 잘 길러주셨다"고 했다. 지하 스님은 "나는 특별히 한 것 없다. 동네 처녀들과 보살들이 불알까지 씻어주며 키웠다"며 "나는 이번에 나온 책도 안 읽었다"고 무뚝뚝한 척했다. 그러면서도 "희수연 때 친구(도반)도 여럿 왔는데 '돈이 있다고 해서 그런 선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다'며 부러워하더라"며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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