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가 23일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정에 모두 승복하자'는 성명을 냈다. 변협은 "헌재 재판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재판관이나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야만적 행동이자 헌법을 유린하는 폭력"이라고 했다. 변협은 특히 정치권을 향해 "탄핵 심판을 당리당략으로 이용해 국민 갈등을 증폭하려는 일을 삼가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도 "여야와 각 당 대선 예비 후보들은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천명하라"고 촉구했다.

촛불 집회 측은 "기각되면 혁명"이란 말을 행동으로 옮길 사람들이다. 태극기 집회 측도 "지금까지는 평화 투쟁을 고수했지만 앞으로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이 비정상적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나라를 안정적으로 끌고나갈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방안의 시작은 '헌재 결정을 모두가 승복하자'고 호소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승복 없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내가 승복한다고 해야 상대도 승복한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지지율이 가장 높은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아무도 깨끗한 승복을 천명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영 정치를 극복하겠다는 안희정 충남지사조차 "(기각) 결정은 존중할 수 없다"고 불복이나 마찬가지인 말을 했다. 선진국에서 대통령 후보가 법원 판결에 불복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하면 정치 생명이 끊어질 처지에 몰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많은 쪽의 뜻대로 안 되면 판결도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다.

최순실 사건 이후 우리는 고통스럽기는 해도 법과 절차를 밟아 수습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탄핵 심판 중인 헌재는 중립을 위해 재판관을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3명씩 지명해 구성돼 있다. 이렇게 우리는 사실을 걸러내고 흥분을 진정시키고 미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여러 과정을 중층적(重層的)으로 밟아가고 있다. 탄핵 여부 결정 전에 미국의 예처럼 정치적 출구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모색해볼 필요가 있지만 결국 그것이 안 된다면 모두가 법률 절차를 받아들여 위기를 넘어가야 한다. 이 중대한 고비에서 대통령 후보들이 '법'을 들고 앞장서지 않으면 나라는 길을 잃는다. 그럴 생각이 없는 대선 주자가 있다면 스스로 물러나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