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도서, 일제는 이미 1929년 파리에서 발견"

    입력 : 2017.02.23 03:01

    ['우리 문화재 수난 일지' 낸 정규홍]

    1929년 조선총독부 잡지 '조선', '歐美박물관과 조선' 글에 언급
    최초발견자로 알려진 故 박병선… 50년 뒤 1975년에 재발견한 것
    "연월일별로 상세히 기록한 책… 문화재 피해 파악의 기초 되길"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잡지 ‘조선’ 1929년 9월호에 실린 후지타 료사쿠의 글. ‘구미(歐美)박물관과 조선(上)’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잡지 ‘조선’ 1929년 9월호에 실린 후지타 료사쿠의 글. ‘구미(歐美)박물관과 조선(上)’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을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확인했다."

    지난 2011년 프랑스에서 영구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외규장각 도서는 1975년 고(故) 박병선(1928~2011) 박사가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 간 그는 학창 시절 스승인 이병도(1896~1989) 교수가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고서들을 약탈해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확인이 안 된다. 유학 가면 한번 찾아보라"고 한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다. 10여년간 도서관·박물관 등을 뒤지고 다닌 끝에 드디어 책을 찾아낸 곳은 프랑스 국립도서관 별관의 파손 서적 보관창고. 도서들은 중국 서적으로 분류된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데 1920년대에 조선총독부박물관 주임(관장 격)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가 파리에서 이 도서들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기록이 나왔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잡지 '조선(朝鮮)' 1929년 9월호에서다. 후지타는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을 돌며 구미(歐美)박물관·도서관 등에 소장된 일본과 한국 문화재를 살폈고, 그 실태를 1929년 9월호와 11월호에 나눠 썼다. 9월호 '구미박물관과 조선(上)'이란 글에 외규장각 관련 내용이 나온다. "이태왕(李太王) 10년 가을 불국(佛國) 동양함대 사령관 '로-쓰' 제독이 인솔한 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고 부고(府庫)의 장서(藏書) 일체를 약탈한 후 도성에 방화하고 퇴각한 사실이 있다. 해장서(該藏書)는 전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존하였으나 그 후 60년간 일차정돈(一次整頓)하지도 않고 장치(藏置·간직해 둠)돼 있다." 후지타는 도쿄제국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경성제대 교수로 재직한 역사학자다.

    정규홍씨
    최근 '우리 문화재 수난 일지'(학연문화사·전 10권)를 펴낸 정규홍(61·사진)씨는 "일제강점기의 신문·잡지·보고서 등을 뒤지다 이 대목을 발견했다"며 "후지타는 파리에서 직접 외규장각 도서를 확인했지만 심층 조사를 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라 어느 누구도 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박병선 박사는 일제가 이미 확인했으나 이내 잊힌 도서들을 50년 후에 '재발견'했다는 얘기다. 1991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으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요구를 정부에 처음 건의했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박병선 박사는 아마 후지타의 발견 사실을 몰랐을 거다. 후지타가 방문했던 1920년대까지만 해도 책이 서지 목록에 있었다는 얘기인데, 1970년대에 박 박사가 찾아냈을 때는 파손 서적 보관창고에 방치돼 있었다"고 했다.

    '우리 문화재 수난 일지'는 1866년 병인양요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 우리 문화재 수난의 역사를 연도별·날짜별로 세밀하게 기록했다. 도굴·도난·약탈 등의 수난사(史)가 매 권 450쪽, 총 4596쪽에 이른다.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미술교사를 지낸 정씨는 "1981년 첫 교직공무원 연수 중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함부로 취급했다는 강의를 들으며 피가 거꾸로 솟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문화재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2011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프랑스에서 돌아온 조선 왕실 의궤를 살펴보고 있다.
    2011년 8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프랑스에서 돌아온 조선 왕실 의궤를 살펴보고 있다. /허윤희 기자
    인사동과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고 주말엔 도서관으로 출근하며 자료를 모았다. 대한매일신보나 황성신문 축쇄판, 일본 학자들의 논문과 조사 보고서 등 35년간 모은 자료들이 집 안 현관, 베란다까지 쌓여 있다고 했다. 정씨는 "연월일별로 상세히 기록한 이 책이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피해 사례나 당시 상황을 파악하는 기초 자료로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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