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측 "아스팔트에 피", 경악할 法治 거부 선동

조선일보
입력 2017.02.23 03:20

22일 헌재에서 열린 탄핵심판 사건 변론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 변호인인 김평우 변호사가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안 해 주면 시가전(市街戰)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대통령파와 국회파가 갈려 이 재판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내란(內亂)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영국 크롬웰 혁명에서 100만명 이상이 죽었다"고도 했다. 이날 박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포함한 재판부와 국회 소추위원단을 향해 "(서로) 편을 먹었다"는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냈다. 국회 측 소추위원단을 향해서는 "북한식 정치 탄압" "국회가 야쿠자"라는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 우리 내부는 탄핵 결정을 요구하는 촛불 세력과 기각을 주장하는 태극기 세력이 서로 가파르게 대치 중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불복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제 법리와 증거만으로 공방을 벌여야 하는 헌재 재판정에서조차 "피로 덮일 것" "내란"과 같은 선동이 나왔다. 심각한 일이다.

재판의 한 당사자가 심리 진행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재판부를 향해 집단 폭력 사태를 시사하면서 위협하는 것은 귀를 의심케 하는 반(反)법치 선동이다. 그것이 노조원이나 좌파 시민단체가 아니라 법치 수호를 가치로 삼는 보수적 변호인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설사 탄핵이 기각된다고 해도 이들의 이 행태는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민주당 대선 주자들 중에 단 한 사람도 헌재 결정에 흔쾌히 승복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진영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신선한 선언으로 국민 지지가 높아지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조차 어제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국민의 상실감을 생각해볼 때 헌법적 결정이니 존중하겠다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법치를 존중할 수 없다니 나라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안 지사가 이러는 것은 '헌재 승복'을 말하면 민주당 지지층이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탄핵을 확신한다는데 '헌재 승복'이라는 당연한 말 한마디도 못하는 분위기라니 이들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을 만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표는 "나는 승복하겠지만"이라면서도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이 나오면 국민이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토를 달고 있다.

촛불은 '기각되면 혁명'이라고 하고, 태극기 세력은 '탄핵되면 아스팔트에 피'라고 한다. 파국이 눈앞에 왔는데도 정치인 아무도 나서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 극렬 세력에 영합만 한다. 정말 나라가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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