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4대륙 선수권 대회가 지난 주말 강릉에서 열렸다.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시험 대회' 성격이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이번 대회 TV 중계를 봤다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열렸다고 여길 듯하다. 일본 남녀 선수가 상위권에 올라서만은 아니다. 이들을 응원하러 강릉에 단체 여행 온 일본 팬들로 인해 경기장이 일장기로 덮였다. 남자 피겨 스타 하뉴 유즈루가 두 차례 경기를 마쳤을 때 빙판 위에 쏟아진 일본 관중 선물이 장관을 이뤘다.
▶시청자를 더 착각하게 하는 건 빙판을 둘러싼 일본 광고다. 한국 시장과 상관없는 일본 렌터카, 소비자금융, 통신 판매 광고가 다닥다닥 붙었다. 일본어 그대로 낸 경우도 있다. 스타의 힘은 이렇게 크다. 일본 최대 지상파 민영방송이 이번 경기를 중계했다. 생중계, 녹화 중계, 주중, 주말 방송을 가리지 않고 저녁 8시 황금 시간대에 배치했다. 일본 광고가 대거 붙은 이유다. 한국에선 지상파가 아닌 스포츠 케이블 채널이 경기를 중계했다. 장소만 한국일 뿐 일본 잔치였다.
▶지난 9일 개막 1년을 앞두고 일본 NHK 메인 뉴스가 평창 동계올림픽 특집 보도를 했다. KBS의 관련 특집에 못지않았다. 이날 우리 공영방송에서 평창 특집뉴스는 최순실 파문과 구제역 파동의 뒤를 이었다. 일본이 평창에 관심이 큰 것은 일단 스타가 많기 때문이다. 피겨, 스키 점프,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세계 1위를 달린다. 같은 시기 스키 점프 대회가 열린 평창 경기장 역시 일본의 '점프 여제' 다카나시 사라의 출전으로 수많은 일장기가 펄럭였다.
▶왕년의 동계올림픽 강국 일본은 십여 년 맥을 못 췄다. 2002년과 2010년엔 '노 골드' 수모까지 맛봤다. 국민적 관심과 정부의 응원이 줄어든 까닭이다. 이랬던 일본이 한국보다 더 열정적으로 평창을 바라보는 것은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관련이 있다. 가까운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부터 관심에 불을 질러 그 열기를 2년 후 도쿄올림픽까지 이어보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한 일본인은 지난주 "일본 기업으로부터 평창올림픽 단체 표를 사달라는 부탁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많은 일본인에게 평창까지 거리는 홋카이도 스키장만큼 가깝다. 일본은 경기(景氣)도 좋고 사건·사고도 적어 스포츠에 관심을 기울이기 좋은 상황이라고 한다. 한국이 돈 써서 여는 잔치인데 일본이 더 열기가 높은 것 같다. 와서 즐겨준다니 고마운 일이기는 하지만 올림픽이 1년 남았는데 '그런 게 있었지…' 하는 우리 처지가 딱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