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미치지 않은 트럼프'의 증거들

입력 2017.02.21 03:06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
요즘 한국이나 미국에선 "트럼프가 미쳤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심지어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공개적으로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가 정말 미쳤을까. 미국 야당과 반(反)트럼프 정서로 똘똘 뭉친 미국 주류 사회는 그렇기를 바랄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트럼프가 미치기는커녕 오히려 치밀하다는 증거가 눈에 띈다. 반(反)이민 행정명령 파문과 러시아와 내통 의혹, 연이은 막말 등 폭탄처럼 터지는 돌발 이슈에 묻혀 보이지 않을 뿐 그가 가리키는 정책 방향은 너무나 명확하다. 그는 취임 후 한 번도 자신의 목표에서 이탈하거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제조업 일자리 만들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를 뽑아준 백인 중하층, 노동자 계층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다. 물론 미국처럼 고임금 국가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각종 통계는 기술 혁신과 자동화로 미국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이 상당히 회복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 2007년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의 평균 시간당 임금은 78달러였지만, 2015년엔 54달러까지 떨어졌다. 2014년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1달러로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을 다른 나라에서 만든다고 가정할 때 중국·대만·러시아는 0.9~1달러로 만들 수 있고, 한국과 영국·스페인은 오히려 미국보다 비싼 1~1.1달러를 들여야 만들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광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광산업에 대한 규제를 없애는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는 이를 근거로 끊임없이 자동차 회사 등 제조업체의 팔을 비튼다. 트위터로 공격하고, 백악관으로 불러 공장을 증설하라고 협박하듯 요구한다. 여기에 트럼프가 약속한 감세 등 정책 지원이 이뤄지면 미국 제조업의 부흥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 내 취업비자(H-1B)도 손보려 하고 있다. 미국 내 IT 기업들이 "해외 우수 인력 유입을 막는다"며 반발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나름의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2015년에 발급된 총 17만여건의 H-1B 취업비자 중 69%를 인도인, 11%를 중국인이 가져갔다. 이들 대부분은 IT 시설의 유지 보수 등을 담당하는 외주 회사 소속 저임금 일자리다. 트럼프는 이런 일자리를 미국 시민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살인적인 미국 의료비 문제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접근은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현실적인 면이 있다. 이른바 '오바마 케어'는 저소득층 건강보험 가입을 늘렸지만, 그 결과 미국의 평균 보험료는 20% 넘게 올랐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이런 보험료의 급상승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반면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제약사 사장들을 불러모아 약값을 깎으라고 다그쳤다.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4.6%인데, 지출하는 약값은 33%나 된다. 오바마 케어를 제대로 작동시키려면 우선 치솟는 약값부터 잡아야 한다. 트럼프에겐 이게 핵심이다.

트럼프는 미국 상·하원을 장악한 데 이어 조만간 대법원의 지형도까지 바꿀 수 있는 '수퍼 파워' 대통령이다. 미국 주류 사회와 언론이 트럼프를 조롱한다고 해도 한국까지 여기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트럼프가 무엇을 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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