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두 달 前에도 무대 올랐던 '최고령 판소리꾼'

    입력 : 2017.02.20 03:03

    ['흥보가' 인간문화재 박송희 名唱]
    김소희·박록주·박봉술 선생의 가르침 받고 다섯 바탕 섭렵

    박송희 명창은 두 달 전까지 무대에 오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현역 최고령 판소리꾼이었다.
    박송희 명창은 두 달 전까지 무대에 오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현역 최고령 판소리꾼이었다. /김승완 기자

    현역 최고령 판소리꾼으로 활동해온 박송희(본명 박정자·90) 명창이 19일 오전 별세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인 명창은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때 전라도 광주 권번(券番)에서 판소리, 가곡, 가사, 승무, 꽃춤을 배웠다. "소리를 배우면 살기가 낫다"는 어머니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권번을 졸업한 뒤 1944년 '동일창극단'에 들어가 임방울·이동백·송만갑 등 쟁쟁한 명창들과 함께 공연을 다녔다. 1950년대 여성국극 동호회에 참여했고, 새한국극단·햇님국극단 주연으로 활약했다.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스승 박록주(朴綠珠·1905~1979) 명창과 만났던 1963년부터다. 생전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 넷에 돈 한 푼 없던 나를 스승님이 거둬주셨다"고 했다. 당시 30대 중반인 그는 4남매를 키우고 있었고,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다.

    "소리를 배우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소리를 배우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했더니 '소리 공부하는 데 돈이 무슨 필요가 있노. 소리만 잘하면 됐지' 하시더군요." 스승은 엄마처럼 그를 챙겼다. "수돗물로 끼니 때우고 소리 공부하러 갈 때가 많았어요. 선생님이 가만히 보다가 집 밖에 오뎅 장수가 지나가면 '너 이것 묵어봐라, 맛있다' 하면서 사주시곤 했어요."

    박 명창은 당대 최고 명창들의 가르침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을 섭렵했다. 김소희 선생에게 '춘향가' '심청가'를, 박록주 선생에게 '흥보가' '숙영낭자전'을, 박봉술 선생에게 '적벽가' '수궁가'를 배웠다.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12년간 일했고 '흥보가' '숙영낭자전' 음반 취입과 창극 '흥보가' 작창(作唱)도 했다.

    작은 체구에서 퍼져 나오는 강직하고 시원한 창법이 장점이다. 박 명창이 스승의 뒤를 이어 '흥보가' 보유자가 된 것은 2002년 나이 일흔다섯 때였다. 일흔일곱이던 2004년에도 '흥보가' 완창무대를 가졌다. 2010년 제17회 방일영 국악상을 수상한 그는 "스승님께 이 상을 바친다"며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 직후 열린 축하공연에서는 스승 박록주 명창이 타계하기 전날 남긴 글에 자신이 곡을 붙인 단가 '인생백년'을 불렀다. "인생백년 꿈과 같네. 사람이 백년을 산다고 하였지만 어찌하여 백년이랴…."

    불과 두 달 전까지도 무대에 올랐다는 그는 엄마 같은 스승 곁으로 영원히 돌아갔다. 유족으로는 아들 서창수(개인 사업)씨 등 2남 2녀가 있다. 발인은 23일 오전 6시 30분.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031)810-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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