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불꽃의 강도 떨어졌을 뿐 살아있어… 邊方 장수가 한양 온 것도 기적"

    입력 : 2017.02.20 03:03

    ['아웃사이더'의 반란… 이재명 성남시장]

    "대통령은 뜻을 이루는 手段, 정치인들은 표 얻기 위해
    얼굴 바꿔도 난 안 바꿔… 설령 선택 못 받더라도"

    "정치인으로서 武器는 말뿐, 담보 없이 내 말 믿게 해야…
    나는 흙수저나 무수저이고 '노무현 遺産'도 없지 않나"

    이재명(54) 성남시장을 만나려니 걱정이 좀 됐다. 그가 워낙 토론에 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치 않게도 대담(對談)은 불꽃 튀는 논쟁처럼 됐다. 내가 "불길이 빨리 활활 타오르면 빨리 사그라진다"며 그의 지지율 추락을 언급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맞받았다.

    "지지율을 올리려고 촛불집회 발언을 한 게 아닙니다. 갑자기 두 배로 올라서 그렇지, 그전에도 5%쯤 됐습니다.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요. 불꽃 강도가 떨어졌을 뿐 아직 살아있잖아요. 변방(邊方)의 장수가 고관대작이 노는 한양 도성에 들어온 것만 해도 기적 아닙니까. 더 폭발할 수도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얼굴을 바꿔도 저는 안 바꿉니다. 설령 선택을 못 받아도요."

    이재명 성남시장은 “부패 기득권 세력이 ‘보수’로 참칭하기에 내가 ‘진짜 보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부패 기득권 세력이 ‘보수’로 참칭하기에 내가 ‘진짜 보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
    ―지지자가 소수라도 상관없다는 거지요?

    "다수가 동의할 것으로 봅니다. 가령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범죄적 수단을 써온 재벌 가문(家門) 입니다. 재벌의 부당 이익에 정치인들이 달라붙어 놀아난 겁니다. 이런 기득권 세력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우리 국민이 힘이 없거나 포기해서 그렇지, 제 생각이 다수가 되는 날이 올 거고 그렇게 만들 겁니다."

    ―경쟁자인 안희정 지사는 '중도'로 옮겨가면서 20%대 지지율로 진입했습니다.

    "재벌이나 힘 있는 세력과 손잡고 양보하고 넘어가면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득표해 무얼 할 수가 있습니까. 제 인생 목표는 지위를 얻는 게 아니라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겁니다. 대통령은 그런 꿈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국민이 제 뜻에 동의하면 꿈을 펴고, 기회가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 시장의 등장은 마치 '아이돌 연예인'처럼 신선했습니다. 하지만 매스컴에 많이 노출되고 본인의 얘기를 너무 많이 하면서, "볼 것 다 봤다"며 대중의 관심이 식은 게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제 껍데기를 본 거죠. 쇼윈도의 좋은 자리에 진열된 상품(문재인·안희정)과 구석에 있는 나 같은 상품은 비교가 안 되겠지만, 직접 고르는 경선 단계가 되면 상품의 성능·내용을 보겠지요."

    ―일단 당내 경쟁자인 문재인·안희정과는 어떤 비교 우위가 있습니까?

    "이분들은 싱크탱크니 자문단을 자랑합니다만, 대선(大選)은 '아이디어 경진 대회'가 아닙니다. 정책을 따로 개발할 것도 없이 이미 많은 정책이 나와있습니다. 문제는 실행하느냐 않느냐, 추진할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 일관성이 있느냐는 겁니다."

    ―다른 경쟁자는 안 그렇다는 겁니까?

    "남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저는 누구처럼 물려받은 정치적 자산이 없습니다. 흙수저나 무수저입니다. 당내 경선에서 두 분은 '노무현 유산(遺産)'을 더 많이 갖느냐로 다툽니다. 사실 살아온 궤적과 생긴 것이나 말하는 것에서 제가 노무현과 비슷하지요. 하지만 그에게 기댈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이재명일 뿐입니다. 제가 성남시장 선거 때 내놓은 공약 이행률이 96%입니다. 실행 못 하는 약속은 안 합니다. 적당히 멈추고 타협하거나 말 바꾼 적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이 시장은 '확장성'이 없다고 지적하지요.

    "정치 색깔이 분명한 사람들은 어차피 안 바뀝니다. 문제는 '중도'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입니다. 애매모호한 정책을 안 믿습니다. 기본소득정책과 국토보유세 등 진보 정책을 진짜로 할 수 있으면 누구를 찍겠습니까. 성남시에서 여권 표밭인 분당구 주민들은 처음에는 '빨갱이'라며 제 멱살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장직 재선(再選)에서는 분당구 득표율이 53.8%나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소문이 전국에 퍼진 겁니다."

    세간에는 '사이다'처럼 가볍게만 비쳐졌지만, 그는 정책 분야에서 나름대로 정연한 논리와 주관을 갖고 있었다. 통계에도 밝았다. 기본소득정책은 국가 예산 400조의 7%인 28조원으로 유아·청소년·노인과 장애인 등에게 매년 1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복지이면서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토보유세는 상위 2.5%의 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세금(15조원)을 걷어 전 국민에게 30만원씩 나눠주는 것이다.

    ―지금 대선 주자 중에서 말로써는 이 시장을 이길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제 무기(武器)가 말밖에 없으니까요. 세력(勢力)이 없지 않습니까. 정치판에서 말은 중요하죠. 보증이나 담보가 없이 제 말을 믿게 해야 하니까요. 저는 수백 번 해도 똑같은 말을 합니다. 시류에 따라 제 가치와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니까요. 자기 생각과 다른 얘기를 하면 말이 어렵습니다."

    ―어렸을 때는 어땠습니까?

    "성격이 내성적이었고, 그때는 거의 말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손 잡고 공장 다녔으니까요. 말뿐만 아니라 생각도 없었어요. 꿈을 가질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다섯째인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로 공장에 다녔고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에 진학해 사법시험에 합격함)."

    ―말문이 언제 트였습니까?

    "(웃음)변호사가 된 뒤였지요. 저처럼 억울한 사람이 없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최보식 선임기자와 이재명 성남시장

    ―'저처럼 억울하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요?

    "13살 때 글러브 제조 공장에서 왼팔이 프레스에 눌렀어요(현재도 팔이 휘어진 상태다). 보상 한 푼 못 받았어요. 안 쫓겨나려면 다친 팔을 묶고서 일해야 했어요. 그 시절에 많이 맞았고 갈빗대가 부러진 적도 있어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이 시장의 시각은 성장 과정에서 형성됐겠군요?

    "그건 사실이고요, 제 가족과 주변은 여전히 그런 환경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하던 큰 형님은 왼쪽 다리를 절단했고, 다른 형님은 청소 회사의 말단 직원, 막내 동생은 환경미화원, 누님은 요양보호사입니다. 여동생은 건물 청소를 하다가 과로로 죽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그 자녀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형님 부부와의 욕설 다툼이 알려지면서 이 시장의 '인성(人性)'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물론 그동안 충분히 해명했습니다만.

    "당시 형님 부부가 어머니께 어떻게 욕했는지 압니까. 그걸 참을 수 있겠습니까. 힘들게 살아왔던 집안사가 터져 나온 거죠. 제 부덕(不德)도 있고…. 이제 국민의 판단에 맡기죠."

    ―그런 환경에서 머리 좋은 아이는 어떡하든 출세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지 않습니까?

    "출세라기보다 그 환경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탈출 욕망이었지요. 대학 들어가면서 제가 겪은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칠 때 제 인생 목표를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걸로 정했습니다. 저는 소수고 아웃사이더였으니까 한명이라도 더 설득해야 했지요. 참, 아까 제가 말을 어떻게 잘하게 됐느냐고 질문했지요? 마케팅 관련 서적을 좀 봤어요. 물건을 파는 것은 내 생각을 파는 것과 같거든요. 심리학과 설득에 관한 책도 보면서 말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은 이 시장의 말에 설득되기보다 '과격' '위험'을 떠올릴까요?

    "양면(兩面)이 있습니다. 보수층은 저를 거칠고 과격하고 품격 없다고 하지만, 다수 서민층에서는 달라요. 저는 여느 정치인들처럼 돌려 말하지 않고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로 직설적으로 말하지요."

    ―언어는 인격(人格)에서 나옵니다.

    "그게 '프레임(frame)'일 수 있습니다. 제가 트럼프처럼 불합리하고 막말을 한 적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주세요."

    ―촛불집회에서 "박 대통령을 수갑 채워 구치소로 보내자"라고 했던가요?

    "그게 막말입니까. 똑같은 사안을 놓고 보는 입장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쪽에서는 '시원하다', 다른 쪽에서는 '왜 품격 없이 막말을 하느냐'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말을 한 적은 없습니다."

    ―확정 판결이 난 것도 아니고, 명색이 변호사 출신의 공직자인데 그런 발언이 상식에 맞습니까?

    "감옥 간 수하(手下)들이 '대통령이 다 시켜서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범죄를 저질렀는데 대통령이라고 예우를 계속 받아야 합니까.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했지만, 만약 기각 결정이 나면 저는 따라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대선 주자가 법치(法治)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이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옵니다. 이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법과 제도, 국가기관이 있는 겁니다."

    ―그런 논리라면 대통령 지지율이 20%로 떨어지면 교체해야 합니까? 민심은 절대 선(善)도 불변도 아니며 바뀔 수 있는 겁니다.

    "대통령의 퇴진 사유가 될 범죄가 있고 증거로 다 드러났습니다.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주의를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헌법재판관을 비롯해 복무하는 공직자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탄핵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는 국민의 뜻이 아닙니까?

    "그것도 민심의 일부이겠지요. 생각의 차이가 있는 거니까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이 시장은 한 인터뷰에서 '진짜 보수주의자'라고 했지요?

    "부패 기득권 세력이 '보수'라고 참칭하기에 제가 그렇게 말한 겁니다. 법과 책임을 무시하며 이익을 취하는 이들의 경제적 독점이 더 세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기회의 공정성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기회의 총량(總量)이 줄어든 게 아니라 소수 기득권에 의해 기회의 집중과 독점이 심화된 거죠. 소득도 그렇습니다. 몇몇은 편한 길을 가겠지만 대부분 사람은 잃고 있는 거죠."

    ―이 시장은 기득권에 맞서 약자와 빈민을 위해 살아왔다고 했는데 재산이 23억원이 넘더군요. 저는 명색이 좋다는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서 30년째 일해왔는데 재산이 이 시장의 3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이건 공정합니까?

    "(웃음)능력 문제죠. 사람들이 내 재산에 대해 혼란을 느끼겠지요. 저는 무료 변론만 한 게 아니라, 소송에서 잘 이기는 유능한 변호사였습니다. 열심히 일했고, 분당의 내 집값도 세 배 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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