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정남이 묵던 집 화재때, 北대사관 직원들 멀뚱멀뚱 구경만"

    입력 : 2017.02.18 03:03

    [김정남 암살]
    이민석 특파원 쿠알라룸푸르 르포

    - 김정남이 묵던 집
    장성택 처형 두 달 후 화재 발생
    현지 주민이 소방서에 신고해 집안에 있던 북한 사람 5명 구조

    - 극도로 예민한 북한 대사관
    취재진이 못 누르게 초인종 떼…
    외신 기자 스마트폰 빼앗아 촬영 사진 지운 뒤 돌려주기도

    이민석 특파원
    이민석 특파원
    17일 오후 김정남 일가가 말레이시아를 찾아 종종 묵었던 곳으로 알려진 쿠알라룸푸르 상업 도심 부킷 다만사라 인근 주택가. 2~3층 주택이 모여 있고, 출입자를 검색하는 초소까지 설치돼 있다. 월세가 1만5000~2만5000링깃(약 380만~640만원)으로 쿠알라룸푸르에서 손꼽히는 부촌(富村)이다. 북한 대사관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20여m 떨어져 있다. 한 주민은 "초소를 지나면 북한 사람들이 자주 묵는 저택이 나온다"며 "몇 년 전 고급차를 타고 집 앞에서 내리는 남성을 봤는데 최근 뉴스를 보니 그가 바로 김정남이었다"고 했다.

    입구에서 10m를 걸어가니 660㎡(약 200평) 규모의 노란색 2층 저택이 나타났다. 기자를 따라온 경비원이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수시로 이 집을 오갔는데 최근엔 아무도 찾지 않고 있다"고 했다.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벨을 눌러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 입구 우편함에는 2월 치 전기 요금 영수증이 들어 있었고, 29링깃(약 7500원)이 체납됐다고 적혀 있었다.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50대 남성 주민은 "김정남을 취재하러 왔느냐"며 "최근에는 북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정남이 머물던 집, 2014년 의문의 화재 - 김정남이 과거 말레이시아 방문 때 종종 머물던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2층 집이 2014년 2월 의문의 화재로 불타는 모습(위 사진). 주민들은 “당시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등 북한 가족 5명이 구조됐는데, 20여m 거리의 북한 대사관에서는 아무 조치도 안 취했다”고 전했다. 당시는 김정남 후견인인 장성택이 처형된 지 두 달여 지난 시점이다. 작은 사진은 현재 모습.
    김정남이 머물던 집, 2014년 의문의 화재 - 김정남이 과거 말레이시아 방문 때 종종 머물던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2층 집이 2014년 2월 의문의 화재로 불타는 모습(위 사진). 주민들은 “당시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 등 북한 가족 5명이 구조됐는데, 20여m 거리의 북한 대사관에서는 아무 조치도 안 취했다”고 전했다. 당시는 김정남 후견인인 장성택이 처형된 지 두 달여 지난 시점이다. 아래 작은 사진은 현재 모습. /말레이시아 주민 A씨 제공
    이 집은 말레이시아인 B씨가 소유하고 있었다. 북한 인사가 이곳을 찾는 경우 외에는 일 년 중 상당수가 비어 있다고 한다. B씨는 본지 통화에서 "북한에서 손님이 오면 북한 대사관이 손님을 위해 단기식으로 이 집을 빌리고 돈을 지급했다"면서 "김정남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고 했다. 집주인과 주민들 말에 따르면 북한 대사관이 사실상 '게스트하우스'로 쓰던 집인 것이다.

    이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30년째 살고 있다는 현지 주민 A씨는 "흰색 셔츠에 검정 바지 차림 북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이 집을 들락날락했다"며 "그들이 워낙 말수도 없고 조심스러워 교류는 없었다"고 했다. 저택 안쪽에는 30m 길이의 녹슨 철제 계단이 있었다. A씨는 "대사관과 저택 담장을 이어 자유롭게 오갔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이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에서 초인종을 아예 제거해버렸다”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대사관 입구 사진.
    워싱턴포스트 특파원이 “(말레이시아) 북한 대사관에서 초인종을 아예 제거해버렸다”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대사관 입구 사진. /트위터
    이 저택은 원래 흰색이었지만, 2014년 2월 화재로 건물 대부분이 타 노란색 건물로 개조했다. 우편함과 입구 철제문 곳곳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당시 화재 장면을 촬영한 A씨는 "오전 7시쯤 조깅하다가 이 저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길래 초인종을 여러 번 눌렀지만 반응이 없어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불이 났다'고 외쳤다"며 "그런데 북한 대사관 직원들은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했다. 자기들 '귀빈'이 묵고 있는 집에 불이 났는데도 방치했다는 얘기다. 10여 분 뒤 도착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집 담장을 넘어들어가 북한 주민 5명을 구조했다고 한다. A씨는 "덩치 큰 남자와 가족으로 보이는 4명이 부축을 받고 나왔는데 지금 보니 김정남이 아닌가 싶다"며 "김정남 피살 이후 동네에서는 당시 김정남이 이곳에서 살해될 게 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었다"고 했다.

    현지인 말을 종합하면 김정남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쿠알라룸푸르를 정기적으로 찾아 이곳에서 묵었고 사용 비용은 북한 대사관이 지불했다. 이때는 김정남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김정남·정은의 고모부)의 조카 장영철이 말레이시아 대사를 맡고 있었다. 하지만 2013년 12월 장성택이 처형되고, 같은 달 장영철도 평양으로 불려들어간 뒤 김정남의 말레이시아 방문도 뜸해졌다. 그리고 김정남이 이 집을 마지막으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4년 2월에 화재가 발생했다. 그 뒤 발길을 끊었던 김정남은 2015년 이후부터 다시 말레이시아를 오갔지만, 이 집 대신 고급 호텔에 머물렀다고 한다

    북한 대사관 앞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 앞에 17일 취재진 수십 명이 몰려 출입하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북한 대사관은 이날 외신기자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사진을 지우는 등 ‘김정남 피살’과 관련한 각국의 취재 경쟁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 대사관 앞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북한 대사관 앞에 17일 취재진 수십 명이 몰려 출입하는 차량을 바라보고 있다. 북한 대사관은 이날 외신기자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사진을 지우는 등 ‘김정남 피살’과 관련한 각국의 취재 경쟁에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오전 북한 대사관은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오전 9시 30분쯤 강철 북한 대사가 차에 타고 대사관을 나서자 취재진이 차에 접근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대사관 차량이 수시로 드나들었고 직원들은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대사관은 이날 취재진이 더 이상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도록 아예 떼 버렸다. 현지 매체 베르나마는 이날 건물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은 외신 기자의 스마트폰을 한 북한 대사관 직원이 빼앗아 사진을 지우고 돌려줬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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