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석 칼럼] 남북 정상회담 幻想 끝났다

    입력 : 2017.02.18 03:17

    兄 살해·고모부 處刑 김정은에겐 制動장치 없어
    문재인 前 대표, 알쏭달쏭 사드 解法 정리해야

    강천석 논설고문
    강천석 논설고문

    한국 대통령은 너나없이 북한 최고 권력자와 회담을 희망했다. 북핵 위기 이후 한층 정도가 심해졌다. 남북 정상회담을 무슨 숙원(宿願) 사업처럼 중요 정치 목표로 내걸기도 했다. 북한은 모든 권력이 최고 권력자 한 사람에게 집중된 체제라서 위에서 합의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톱-다운(top-down)' 방식밖에 없다는 게 명분이었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이 오래된 환상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의 김정남 살해 테러로 산산조각이 났다. 김정은이 "조건 없이 평양에서 만나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치자. 다음 대통령이 받을 수 있을까. 받는 순간 온 세계가 경악(驚愕)할 것이다. 김정남은 배가 다르다지만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다. 현대 역사에 국민 수천만명을 학살한 독재자는 여럿 있었어도 형을 살해한 최고 권력자는 없었다. 2013년에는 고모부를 처형했다. 고사기총이란 무기로 뼈와 살을 날려버렸다. 한국 대통령이 이런 인간과 세계 TV에 나란히 등장하는 순간 도덕성은 지옥으로 추락할 것이다. 인권이란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도 상실한다.

    만일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 사항이란 걸 발표한다면 세계 게시판에 한국 대통령의 어리석음을 광고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있어야 약속을 뒤집지 않는다. 국제공항 한가운데서 형을 살해한 김정은에겐 부끄러움과 두려움의 흔적도 없었다. 이런 상대와 맺은 약조(約條)가 깨지지 않으리라고 믿는다면 동맹국의 비웃음을 사고 불신(不信)을 키울 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 지망생은 남북 정상회담 집착증(執着症)을 확실하게 졸업해야 한다. 북한은 줄곧 이 집착증을 뚫어보고 이용해왔다. 정상회담 비밀 예비 교섭에선 으레 '북쪽이 만나주면 남쪽은 무슨 선물을 내놓을 것이냐'가 첫 관문(關門)이 됐다. 이 고개를 넘어야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합의·발표할 것이냐'는 주제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과대(過大) 기대 심리는 역사의 전례(前例)와 어긋난다. 동맹 관계였던 미국-영국, 독일-프랑스, 미국-일본 정상회담에서 협력 확대와 문제 해결의 계기를 마련한 경우는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냉전 시대 미국-소련, 미국-중국처럼 적대(敵對) 관계의 두 나라가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뚫은 사례는 드물다. 1960~1970년대 소련과 중국이 이념 갈등으로 등을 돌린 이후 몇 차례 성사된 정상회담도 결실(結實) 없이 끝났다. 분단 시대 동-서독 정상회담도 실무자가 합의한 내용을 정상들이 확인한 걸로 그쳤다. 역사가 이런데도 아직도 남북 정상회담을 핵 위기를 벗어날 비상 낙하산 으로 여긴다면 시대착오다. '제사를 생각하는 쪽'과 '제삿밥만 생각하는 쪽'은 오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김정남 살해 이틀 후 아버지 김정일 생일을 기리는 광명성절(2월 16일) 기념식에 등장한 김정은 모습은 섬뜩했다. 눈빛은 어둡고 얼굴은 사신(死神)에 가위눌린 듯했다. 아흔 살 노인 최고인민회의의장 김영남이 몸 전체를 돌려 박수를 보내는데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퇴장했다. 분명 정상(正常)이 아니었다.

    그런 김정은 안에 '같은 민족'이란 제동(制動)장치가 있을 리 없다. 으스스한 느낌이 몰려오면서 핵 공포가 소름과 함께 돋았다. 탈북(脫北) 외교관 태영호 공사의 신변이 염려됐다. 살해된 김정남의 이종사촌으로 1982년 탈북한 이한영의 목숨을 지켜주는 데 실패했던 기억이 새로워지기도 했다.

    정파가 다르면 장기(長期) 안보 대책은 각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상(非常) 응급 대책까지 정파에 따라 뜻이 갈리는 건 심각한 사태다. 대통령은 권한이 정지됐고, 권한대행이 있다지만 나라 돌아가는 꼴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와 다를 바 없다. 대통령도, 국회도 탄핵 공방(攻防) 이외에는 생각이 없다. 탄핵 찬반 시위 규모 늘리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거리의 군중에게 정치 지도자 이상의 안보 안목(眼目)을 기대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이 살아있는 나라라면 그래도 누군가는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을 목표로 뛰고 있는 후보, 그 가운데서도 선두를 다투는 후보 말고 누가 그 몫을 맡겠는가. 이 비상 국면에서 한-미 동맹의 틈이 벌어지는 걸 반길 인물은 김정은밖에 없다. 현 시점에선 미-중 사이에 걸터앉겠다는 욕심은 엉덩방아 찧는 걸로 끝나기 십상이다.

    대통령 후보에게 무턱대고 종북(從北)의 잣대를 들이대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정리할 건 정리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문 후보 외교 자문단은 '사드 재검토가 배치 거부를 뜻하는 건 아니다'는 해설을 흘려왔다. 어느 쪽이 본심(本心)인가. 이 정리 작업의 제일 큰 수혜자(受惠者)는 안희정 지사와 격차가 10%대로 좁혀진 문 후보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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