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의인과 모사꾼 사이

    입력 : 2017.02.18 03:14

    최순실 측근들 암투 새 정황에
    "대통령과 최순실은 피해자이고 고영태가 사건 꾸몄다" 주장 퍼져
    고발자가 깨끗하지 않다고 해서 '대통령 무결' 입증되진 않지만
    특검, 고영태 수사 통해 '농단 속 농단 사건' 밝혀야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박은주 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이른바 '애국 세력' 사이에서는 '이 모든 사태의 기획자는 고영태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은 희생자'라는 논리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대통령 변호인단이 내놓은 전화 녹음 2000건(그 중 1000건은 영어 회화 파일이란 얘기가 있다) 중 고영태와 측근들이 나눈 이야기가 그 근거다. '박근혜와 친박은 끝났다' '다른 쪽(반기문)과 인터뷰하고 한 20억쯤 달라고 하자' 같은 말들이 나온다.

    화제의 중심에 서면, 개인 과거사가 시시콜콜 까발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정보의 신뢰도는 높은 경우도, 얼토당토않은 경우도 있다. 사건이 터지자 '고영태가 과거 남성 접대부로 일했다'는 주장과 함께 그 시절 사진이 떠돌았다. '고영태와 최순실은 유흥업소에서 만났는데, 고영태에게 여자가 생기면서 쫓겨났다더라' '고영태의 여자는 자살한 유명인과도 관계가 있던 유흥업소 출신 여성이다' 등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가 넘쳐났다.

    요즘은 '1가구 1기자' 시대. 이른바 '인터넷 찌라시'를 통해 이런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 적잖다. 대중은 '유흥업소, 배경이 없는 고영태, 재력 있는 최순실'을 키워드로 그들 관계를 유추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고영태의 증언이 '민주주의 법 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에 대한 염증'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기이하게도 국정감사 현장에 고영태가 나타났을 때 야당은 그를 '정의로운 내부고발자'로 모셨다. 추가 증언을 회피하는 그를 두고는 '고영태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느새 그는 '목숨 걸고 증언하는 의인'으로 추대됐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그들의 눈을 가렸을 것이다. 그들의 '뻔한 연기'가 이제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을 '걔'라 호칭하며 작전 짜는 목소리들을 들어보면, 고영태가 재단을 삼키려 했다는 주장이 터무니없이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주장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렇다 한들, 선출된 권력이 암시적 위력을 동원해 재단을 만들고, 대기업에 특정인 기업을 봐주도록 한 혐의가 뒤집힐까. 재단을 만드는 과정의 불공정성과 재단 형성 이후 암투는 별개로 규명될 문제다. '고영태의 불순한 의도'가 대통령이나 최순실의 결백을 증명하지는 못하는 구조다.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지만 결국 그 자신도 반란군 손에 죽은 '잉글랜드의 수양대군' 리처드 3세(1483~1485 재위)를 노래한 영국 민요의 가사는 이렇다. "못 하나가 없어서, 편자를 잃었네/ 편자 하나가 없어서, 말을 잃었네/ 말 하나가 없어서, 기수를 잃었네/ 기수 하나가 없어서, 전투에 지고 말았네/ 전투 한 번 져서, 왕국을 잃고 말았네/ 결국 편자 못 하나가 없어서, 모든 걸 잃고 말았네."

    편자 없는 말 한 마리가 연쇄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 왕 죽음의 원인이 '말(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영태의 과거 이력과 의도를 '국정 논단'의 시초와 결말이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왕을 죽였다'고 하는 말과 똑같은 이치다. '농단 속 농단'으로 오리지널 '농단'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고영태 기획론'을 주장하는 이들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특검은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국세청 주사의 요구도 뿌리치기는 어렵다'는 현실론 대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을 구속했다. 음성적으로,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특기생에 대한 성적 특혜를 이유로 소설가 겸 대학교수를 새벽에 집에 들이닥쳐 체포했다. 특검이 고영태만 그냥 둔다면 '편향됐다'는 주장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최순실을 농락한 괘씸죄'로 고영태를 기소할 수는 없다.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특검은 지금 '시간이 없어 2000개 파일을 검토하지 못했다'며 '특검이 연장되면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고영태 유죄론' 주장이 '특검 연장론'에 무게를 실어주는 셈이다. 고영태는 물론 '그의 적들'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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