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처음 시신을 해부하던 날

  • 송태호 송내과의원 원장·의학사

    입력 : 2017.02.18 03:03

    [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그날 저녁 우리는 소주를 마셨다… 울거나 취한 이는 없지만 분위기는 어두웠다
    해부 실습실서 사진찍은 몇몇 젊은 의사들 행동 선배로서 사과드린다

    크게 숨을 들이켜고 실습실로 들어섰다. 실습대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들이 있었고 실내는 숨 막힐 듯 고요했다. 창 밖으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서로를 쳐다보는 우리 눈에는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각자 배정된 실습대에 가운을 입고 늘어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시선을 강단으로 향했다. 잠시 후 의대 학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과 종교인들이 들어왔다. 묵념에 이은 종교의식과 학장님 훈시가 매우 길게 느껴졌다. 드디어 의대 생활의 꽃이자 무덤이 되기도 하는 해부학 커대버(cadaver·의학 교육 목적의 해부용 시신) 실습이 시작된 것이다.

    의대 예과를 마치고 본과 1학년에 진학하면 비로소 병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해부학, 조직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미생물학 등 많은 기초 의학 과목 중 의대생들이 가장 기대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해부학이다. 이미 예과 때 개구리나 쥐 같은 생명체를 해부해보긴 했지만 사람을 해부한다는 것은 두려움 이상의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첫 학기에는 인체의 뼈를 갖고 공부하게 된다. 뼈 각 부분의 이름뿐 아니라 근육과 인대, 주변을 지나는 신경까지 배우고 외워야 할 것이 산더미다. 일부 의대생들은 실습 때만으로는 부족해 따로 인골을 구해 학습을 보충하기도 했다. 골학(骨學)을 무사히 마쳐야만 다음 학기에 커대버 실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말만 해도 시신을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 학교는 학생 8명에게 시신 1구가 배정됐는데 당시 어떤 학교는 시신 1구에 학생 20명이 배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Why] 처음 시신을 해부하던 날
    순식간에 지나가는 의식이 끝나면 드디어 한 학기 동안 우리와 동고동락할 시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 첫째 날에는 직접 해부보다는 머리카락을 비롯한 몸의 털을 제거하는 것으로 시간을 마치게 된다. 망자를 눈앞에서 보게 되는 학생들의 충격을 줄여보자는 뜻일 것이다. 교수님 지시가 떨어졌지만 아무도 선뜻 망자의 얼굴을 덮은 천을 벗겨 내지 못했다. 누가 그 천을 벗겼는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머리카락은 내가 깎아 드렸다. 실습실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가끔 들릴 뿐 세상 어느 곳보다도 고요했다. 머리를 해부할 때까지 얼굴을 볼 수 없게끔 다시 머리를 천으로 꼼꼼히 감싸면서 첫 실습이 끝났다. 그날 저녁 실습 조원끼리 모여 소주를 마셨다. 울거나 취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분위기는 어두웠다.

    해부 실습은 손과 팔에서부터 다리·몸통을 거쳐 머리까지 진행된다. 피부를 박리하고 근육을 드러내며 중간에 지나가는 신경과 혈관들을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책으로만 봐 왔던 것을 실제로 목격하게 된다. 해부가 진행되면서 시신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은 시신마다 배정된 용기에 보관했다가 모든 실습이 끝난 후 한꺼번에 화장하여 안치한다. 시신은 포르말린으로 방부 처리되어 있지만 특유의 냄새가 있어 마스크를 쓰고 실습한다.

    현대 의학 발전의 공로 중 절반은 커대버에게 바쳐야 마땅하다. 지금 진료 일선에서 일하는 수많은 의사도 이 과정을 거쳤으므로 커대버 실습의 숭고함과 엄숙함을 알고 있다. 최근 몇몇 젊은 의사가 해부 실습실에서 사진을 찍는 행동으로 시신과 해부학을 욕되게 한 데 대해 선배 의사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