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추적>'너의 이름은.' 합창상영...청교도의 신대륙 이주에 비견할 사건

    입력 : 2017.02.17 13:43 | 수정 : 2017.02.17 14:56

    /인터넷 캡쳐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지난 16일 기준 누적 관객 362만6257명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달 22일 누적 관객 30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중 역대 흥행 1위 자리에 올랐고(종전 기록 ‘하울의 움직이는 성’ 301만), 매일 기록을 경신 중이다.

    융성한 문화는 종종 새로운 문화를 낳는다. ‘너의 이름은.’ 흥행에 힘입어 등장한 ‘합창상영’도 그런 배경에서 등장한 문화라 볼 수 있겠다.

    ◇왜 합창상영인가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관객이 극장 내에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게 ‘합창상영’이다. 실제로는 노래뿐 아니라 대사 따라 읽기, 효과음 흉내 내기 등 목소리로 하는 건 모두 허용된다 한다.

    일부 일본 문화를 조금 과하게 즐기는 분들 사이엔, 애니메이션 등장 인물에게 말을 걸거나 그들의 대사를 모사(模寫)하는 풍습이 있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문제는 그걸 조용히 영화 보러 온 사람이 가득한 상영관에서 시전한다는 것이다. 이전 기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요새 ‘혼모노’라 불리는 부류가 벌이는 패악질이 대략 이런 식이다.

    고(故) 새뮤얼 헌팅턴 하버드대 교수가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이야기했듯, 이질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맞닿으면 대개 갈등이 발생한다. 최근 ‘너의 이름은.’이 흥행몰이를 하며 한반도 영화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조신하게 영화 보러 온 평범한 사람들이 스크린에 대고 띠용거리는 혼모노 문화를 접하며 충격과 공포에 빠졌고, 온·오프라인에 이들을 규탄하는 여론을 대대적으로 형성한 것이다.

    그래서 ‘너의 이름은.’ 배급사인 메가박스 플러스가 마련한 게 ‘합창상영’이다. 한데 뒤섞여 싸움 벌이지 말고, 차라리 각자에게 어울리는 공간에 떨어져 피차간에 속 편히 지내라는 의미다. 영국에서 탄압받던 청교도가 북미로 떠났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라 볼 수 있겠다.

    ◇아침햇살 반입 가능합니다

    합창상영은 이번 주말 양일(18~19)간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 신촌, 코엑스에서 열린다. 18일에는 동대문에서 4회, 신촌에서 1회 상영된다. 19일은 동대문에서 5회, 신촌에서 1회, 코엑스에서 3회다. 총 1500석 규모다. 특정 노래나 대사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영화 상영 내내 아무 때나 관객이 목소리를 내도 된다. 다만 지휘자나 메트로놈은 따로 없으니, 관객들이 알아서 음정 박자를 맞춰야 한다.

    일반 영화관과 마찬가지로 복장 제한은 없다. 세 지점 모두 아침햇살은 반입 가능하지만, 막걸리는 곤란하다 한다. 당연히 떼창은 가능하지만, 스탠딩은 제재가 들어올 수 있다. 앉은 뒷사람이나 키가 작은 관객 시야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왜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은 합창상영을 안 했나

    사실 여태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너의 이름은.’에 이르러서야 오타쿠와 평범한 시민이 반목하다 ‘합창상영’까지 이어지게 됐을까. 단언할 순 없지만, 글쓴이는 ‘모에(萌え)’의 문제에서 비롯된 사태라 추측한다.

    ‘모에’는 오타쿠 용어로, 참으로 복잡미묘한 단어다.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려면 아예 기사를 새로 하나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짧게 설명하자면, ‘잔망스러워서 뿅가죽는다’ 정도로 말할 수 있겠다. 정확히 아는 분들이 보면 기겁할 설명이지만 분량상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대략 저런 뜻이기 때문에 “아이돌이 모에하다”, “모에하다면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다”, “금발모에” 등의 표현으로 쓸 수 있다. 여담이지만 어떤 대상을 모에하게 묘사하는 것은 ‘모에화(萌え化)’라 부른다.
    왼쪽부터 러시아, 영국, 미국, 일본이 묘사한 셜록 홈즈. 모에화의 강국 일본의 포스가 느껴진다./인터넷 캡쳐
    여하간 이제까지 국내에 선보인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대부분 오타쿠 기준에서 이 ‘모에’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의 응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물론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나 ‘아이돌 마스터 무비: 빛의 저편으로!’처럼 모에에 전력을 때려 박은 작품이 국내 개봉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반대로 오타쿠만 몰려들었을 뿐, 일반인의 흥미를 거의 끌지 못했다. ‘모에’에 집중한 작품은 오타쿠 아니면 이해도 어려운데다 애써 본다 한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오글거리기 때문이다.

    즉, 이제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이 여럿 개봉했다 한들, 일반인과 오타쿠가 한 공간에 모여 감상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은 모에의 밸런스가 적절히 맞아들어가, 일반인도 거부감 없이 보고 오타쿠도 열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앞서 말한 문명의 충돌이 발생했고, 문화 분리수용이라는 보기 드문 사태까지 이어진 것이다.

    ◇사실 전대미문의 행사는 아니다

    여담으로, ‘합창상영’이라는 용어는 이번에 처음 등장했지만, 이와 비슷한 행사는 이전에도 드물게 있었다. 지난 2014년을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를 강타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도 100여개 관에서 노래 따라부르기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행사는 ‘싱어롱(sing-along)’이라 불렸다. 다만 이때는 ‘Let It Go’, ‘Do You Want To Build A Snowman?’등 노래 부분을 따라부르고 명장면에서 박수를 치는 정도였기 때문에, 대사나 효과음까지 몽땅 따라 할 것으로 예상되는 ‘너의 이름은.’ 합창상영과는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싱어롱 상영 공지./인터넷 캡쳐
    앞서 말했던 오타쿠 타깃 작품인 ‘러브라이브! The School Idol Movie’나 ‘아이돌 마스터 무비: 빛의 저편으로!’ 등도 합창상영 비슷한 행사를 연 적이 있다. 일명 ‘콜장판’으로, 영화를 보며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에 추임새를 넣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물론 애초에 이 애니메이션들 자체가 거의 보는 사람만 보는 작품이라, 이런 문화가 있었음에도 세간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한다. 참고로 ‘콜장판’은 ‘극장판’에 영화 중 ‘콜’(call)이 가능하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다. 이 문화의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주로 ‘치어링(cheering)’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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