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가람도서관 1층 로비에 들어서자 헨델의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가 흘러나왔다. 음악의 템포를 지시하는 용어인 '라르고(Largo·느리게 혹은 장중하게)'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헨델이 쓴 오페라 '세르세'의 1막에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사랑하는 이를 플라타너스 나무에 빗대어 되뇌듯 부르는 노래다. 음악 특화 공공도서관다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1685년 2월 23일 독일에서 태어난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이 도서관이 선정한 '2월의 음악가'이다. 헨델은 같은 나라, 같은 해에 태어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함께 서양 고전 음악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얼마 전 찾은 이곳 지하 1층 종합자료실엔 헨델 관련 서적과 음악 CD·DVD가 전시되어 있었다. 베토벤·브람스·슈만 등 헨델의 뒤를 잇는 독일 거장들의 얼굴이 그려진 팸플릿도 놓여 있었다. '3월의 음악가'는 '사계(四季)', '조화의 영감' 등을 작곡한 안토니오 비발디(1678년 3월 4일생·이탈리아)이다.
가람도서관은 2014년 3월 문을 열었다. 파주시가 운정신도시의 문화 시설이 부족하다는 주민의 민원을 받아들여 113억원을 투자해 연면적 2013㎡(608평) 규모로 세웠다. 국내 최초로 클래식 전용 공연장까지 갖추고 있다. 운영은 시의 위탁을 받은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이 맡고 있다.
종합자료실엔 클래식·오페라·뮤지컬·영화음악 등 음악 CD 7500여장과 각종 공연 실황을 녹화한 DVD 1000여장이 있다. 3대의 오디오플레이어와 헤드셋이 갖춰진 음악 감상 공간에서 대출한 CD를 듣거나, DVD플레이어와 무선 헤드폰을 구비한 AV감상실에서 공연 실황 DVD를 즐길 수 있다. 도서관 회원 가입을 하면 CD와 DVD를 1인당 3장, 도서는 7권까지 대출할 수 있다. 자료실엔 1만4000여권의 일반 도서, 베토벤의 일대기 같은 음악 관련 서적 1200여권, 음악 잡지 20종도 비치되어 있다.
가람도서관은 경기 지역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명소로 통한다. 노신영 사서는 "조용히 클래식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듣는 공간으로 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종합자료실 맞은편의 솔가람아트홀은 클래식 음악 연주를 위한 300석 규모의 공연장이다. 별도의 음향 시설 없이도 악기 소리가 잘 퍼지고 잔향(殘響)이 살도록 설계됐다. 파주시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 운영하는 아트홀에선 클래식·재즈·영화음악 등을 주제로 삼은 공연이 한 달에 3~4회 정도 열린다.
가람도서관 1층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이다. 미로 탐험 같은 퍼즐 책부터 '호밑밭의 파수꾼' 같은 명작까지 장서 1만7000여권이 비치되어 있다. 바닥에 앉아 간이 테이블에서 책을 보는 영·유아용 열람실과 영·유아 전용 화장실, 수유실도 갖춰져 있다. 주말마다 가족과 도서관을 찾는다는 정지영(38)씨는 "아이들은 어린이자료실에서 책을 읽고, 나는 남편과 종합자료실에서 공연 실황 DVD를 감상한다"며 "대출한 음악 CD를 차에서 들으며 파주시 일대를 드라이브하면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2층 문화강연실에는 매달 함부르크 발레단 공연 실황 상영회와 같은 음악 관련 행사가 열린다. 뮤지션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인기 프로그램이다. 작년의 테마는 영화음악이었고, 올해는 세계의 전통음악과 악기를 주제로 3월부터 강연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