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어린이에게 '새 삶'을 배달합니다

    입력 : 2017.02.17 03:03

    [21명 도운 전직 우체부 문금용씨]

    50년간 모은 8900만원 기부… 완치된 아이엔 장학금도 지원
    "세 아들 떠나보내고 다짐한 '평생 1억원 기부' 꼭 지킬 것"

    지난 2015년 2월 서울 성북구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백발의 노신사가 품 안에서 구겨진 수표를 꺼내며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했다. 기부의 뿌듯함보다는 뭔가 회한(悔恨)이 깃든 표정이었다. 노신사가 기부한 돈은 7100만원. 그는 "1억원 기부를 인생 마지막 숙제로 생각한다"며 "곧 다시 찾아와 더 기부하겠다"고 했다. 재단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지만, 그는 작년 12월에 수표 1000만원, 올해 1월에도 800만원을 들고 찾아왔다.

    이 노신사는 우체부로 퇴직한 문금용(84)씨. 그는 "하늘이 맡겨준 세 아들을 돌보지 못하고 먼저 보낸 죄인"이라고 했다. 1959년 만삭 아내를 두고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섰던 그는 아내가 첫아이를 사산(死産)했다는 소식을 멀리서 들었다. 1963년 태어난 셋째 아들은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추울까 봐 난방을 지나치게 했던 게 탈이었다. 더운 방에 갓난아기가 오래 누워 있다가 염증이 생겨 숨진 것이다. 1961년 낳은 둘째는 셋째를 잃고 두 해 뒤인 196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모 품을 떠났다. 시름시름 앓기에 감기인 줄 알았는데, 몇 달 뒤 대학 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부모라는 사람이 자식이 이 지경 되도록 무얼 했느냐"는 의사의 호통을 들으며 그는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서울 성북구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퇴직 우체부인 문금용씨가 소아암 완치 어린이들의 사진이 걸린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세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문씨는 재단에 환자 6명의 치료비를 전액 지원했다.
    서울 성북구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서 퇴직 우체부인 문금용씨가 소아암 완치 어린이들의 사진이 걸린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세 아들을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문씨는 재단에 환자 6명의 치료비를 전액 지원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문씨는 "세 아들을 차례로 잃고 죄책감에 하늘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문씨 부부에게 1966년 태어난 넷째 아들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다시 갖게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세 아들을 먼저 보낸 죄를 절대 잊지 않고 평생 다른 아이들 목숨을 구하는 걸로 속죄하겠다."

    1억을 모아 기부할 마음을 먹었다. 그때부터 문씨는 지독한 '짠돌이'가 됐다. 그걸 알 리 없는 주위 사람들은 월급날에도 외식 한번 하지 않는 그를 '구두쇠'라고 한 소리씩 했다. 1997년 36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퇴직한 뒤엔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돈을 모았다. 넉넉하지 않은 벌이였지만 쓰는 돈보다 저축하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았다. 하늘로 간 세 아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약속은 2014년 말 한 달간 입원한 뒤 실행에 옮겼다. "입원하고 보니 이러다 자칫 약속을 못 지키고 가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까지 모은 7100만원을 먼저 기부한 것이다.

    재단은 문씨의 후원금으로 소아암(癌) 환자 6명의 치료비를 전액 지원했고, 완치된 아이 15명에게 장학금도 줬다. 한 소아암 환자 아버지는 문씨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다. "제 딸이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 몰래 계단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딸의 목숨을 살릴 수 있게 돼 정말 감사드립니다." 편지를 받고 문씨는 "50년 전 내가 겪은 아픔을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젊은 시절 마음에 정한 숙제를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씨 후원금으로 치료비를 지원받은 장모(17)군이 보낸 편지는 그를 울렸다. "할아버지 덕분에 건강해지고 있어요.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될게요." 문씨는 "제대로 치료도 못 해준 둘째 아들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 아이들 생명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였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얘들아, 내가 너희는 못 살렸지만 대신 너희 같은 아이들을 살렸단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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