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랑니 뽑던 날

  • 고군일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입력 : 2017.02.17 03:03

    고군일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고군일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

    동네 치과에서 사랑니 하나를 뽑고 나왔다. 지뢰가 터진 듯 황망한 자리에 솜뭉치를 악물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렸다. 사랑니를 처음 뽑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턱이 부서질 것 같은데도 새끼손가락 끝 마디만 한 것이 뽑히지 않았다. 통증을 참다 못해 두 번이나 의사의 손목을 잡고 "잠깐만요, 잠깐만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사정을 했다.

    마취가 덜 풀린 눈으로 건너편 신호등을 보고 있을 때였다. 내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는 뭔가를 봤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것은 급선회하며 길 건너편으로 날아가는 까치였다. 어릴 적 뽑은 젖니를 지붕으로 던지며 아버지 따라 외우던 주문이 생각났다. "까치야 까치야, 헌니 줄게, 새 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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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으로 가는 길엔 할머니들이 좌판을 깔아놓고 군것질거리며 채소를 팔고 있었다. 연탄 화덕에 얹혀 아득한 후각을 불러내는 번데기, 뜨거움을 견디다 못해 터지는 군밤, 종잇장이 된 쥐치는 생전의 제 모습을 기억할까? 의문이 드는 사이, 나물거리 푼 헌 보자기만큼 주름진 할머니 손등에서 진한 더덕 향내도 더듬었다. 좌판이 끝나는 부분에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던 길을 되돌아봤다. 치과 갈 때 걸어간 길인데 그때도 좌판이 있었나 낯설었다. 하긴, 연못에 떨어지는 빗줄기에도, 담장에 핀 찔레꽃에도 덤덤해진 요즘이 아니었던가.

    집에 돌아와 조간신문을 펼쳤다. 면면마다 볕바른 어제 하루의 소사(小史)가 빽빽하다. 며칠 뒤에도 이 이야기들을 다 기억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마취가 풀렸는지 솜뭉치를 물고 있는 자리가 아프다. 솜뭉치를 뱉고 어금니에 기대 투정 부린 사랑니의 빈자리를 더듬어 봤다. 지금껏 살아오며 소홀히 해온 많은 것이 불현듯 존재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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