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고 그림) 봐도 괜찮아요. 우리 집 일곱 살, 네 살 먹은 애들이 집에 둔 담뱃갑 보고 소스라치게 놀랄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어 금연을 결심했습니다."
15일 오후 서울 중랑구보건소 3층 금연 클리닉. 금연 상담사 전영신(51)씨가 건네준 일산화탄소 측정기에 숨을 후후 불던 직장인 김모(38)씨는 19년 피운 담배를 끊기로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금연 클리닉은 문전성시였다. 10분 만에 상담자 3명이 새로 방 안에 들어섰다. "담뱃갑에 박힌 폐암 사진은 진짜 끔찍하더라고요. 비위도 약한데…." 상담받으러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연 동기 중 하나로 경고 그림을 꼽았다.
담뱃갑에 흡연 폐해를 섬뜩하게 알리는 경고 그림이 붙기 시작하면서 금연 결심을 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12월 23일부터 담배 공장에서 나가는 모든 담배 제품의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예전에 생산한 경고 그림 없는 담배가 다 떨어진 최근에서야 경고 그림 붙은 담뱃갑이 본격적으로 시중에 풀렸다. 그러자 금연 상담 전화(1544―9030)에 걸려오는 전화가 이달 들어 두 배로 늘고, 보건소에 '금연하겠다'며 등록하는 사람이 크게 불어났다는 것이 보건 당국의 얘기다.
◇금연 상담 전화 두 배로 껑충
이날 취재진이 찾은 중랑구보건소 상담사들은 "금연 시도자가 늘어난 것이 확연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3시까지 25명이 금연 상담을 받으러 이 보건소를 찾았고, 많은 날은 상담사 3명이 50명까지 상담을 한다. 이 보건소에서만 새로 등록한 금연 클리닉 상담 인원수는 작년 1월 235명에서 올 1월 353명으로 50% 넘게 증가했다.
전국의 보건소 금연 클리닉 등록자 숫자는 작년 12월 2만6320명에서 올해 1월엔 5만1450명으로 약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연초에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작년 1월(4만7242명)과 비교해도 올 1월에는 등록자가 4208명(9%) 많다.
금연 상담 전화로 금연 문의를 하는 전화는 더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금연 상담 전화 건수는 2016년 12월엔 주당 평균 330건이었는데, 1월엔 주당 587건, 2월(1·2주 평균)엔 1214건으로 늘었다. 2월 들어 걸려온 금연 상담 전화는 작년 12월의 3.7배, 올 1월에 비해서도 2.1배 수준이다. 금연 상담 전화를 건 사람에게 '계기'를 물은 결과 '담뱃갑이 계기였다'고 응답한 비율이 작년 12월 24%(330건 중 80건)에서 올 2월엔 80%(1214건 중 968건)까지 올랐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금연 상담 전화를 운영하는 국립암센터 임민경 교수(암관리정책학과)는 "담뱃갑에 경고 문구와 그림 삽입에 대한 민원성 전화도 2016년 월평균 9건 정도에서 2017년 1월 130건, 2월의 경우 10일 현재까지 189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며 "경고 그림이 흡연자들 마음에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흡연율 4.2%포인트 준다는데
복지부에 따르면 경고 그림을 도입한 주요 국가에선 흡연율이 평균 4.2%포인트 줄었고, 브라질에선 최대 13.8%포인트까지 감소했다. 202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9% 이하로 낮추겠다는 목표를 세운 보건 당국은 이번 경고 그림 정책이 흡연율 감소에 영향이 클 것으로 기대한다.
복지부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혐오 그림을 빼달라'는 불만 민원이 늘었다"며 "그만큼 금연 유도 효과가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고 그림의 단기적 효과는 입증됐지만 학교 주변의 편의점 광고 금지 등 비(非)가격 금연 정책들도 추가 시행해야 흡연율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