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

조선일보
  • 이동휘 기자
    입력 2017.02.16 03:06

    청각장애인 엄마 둔 원종건씨, 장갑 용어 바꾸기 캠페인 벌여
    "무심코 한 말이 상처 줄 수 있어"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 어때요?"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의 한 강의실. 언론정보학과 졸업생 대표로 졸업 소감을 발표한 원종건(25)씨가 100여명의 학생·학부모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농아인(청각 장애인)을 낮춰 부르는 벙어리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것이었다.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화답하자 원씨의 어머니 박진숙(55)씨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청각 장애인이다. 2005년까지는 후천적 시각 장애로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런 박씨의 눈과 귀가 돼준 사람이 아들 원씨였다. 박씨는 1996년 간경화로 남편을 잃은 뒤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아왔다. 하나뿐인 자식을 키우기 위해 폐지와 공병을 주워다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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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교정에서 원종건(오른쪽)씨와 어머니 박진숙씨가‘엄지장갑’을 끼고 환하게 웃고 있다. /경희대
    2005년 이 모자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다. 한 방송사 공익 프로그램을 통해 박씨가 각막 기증을 받게 된 것이다. 수술 후 시력을 회복한 박씨의 첫마디는 "종건아, 우리도 좋은 일 하는 사람이 되자"였다. 이 말이 아들의 인생 목표가 됐다.

    원씨는 2012년 대학생이 되자마자 장기 기증 서약서에 서명했다. 농아인들이 볼 영상에 한글 자막을 넣는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각종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 참가했다. 헌혈도 50여 차례 했다.

    지난해 9월부터는 '설리번'이란 공익 단체를 만들고 '벙어리장갑' 대신 '엄지장갑'이란 용어를 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원씨는 "우리가 별생각 없이 쓰는 벙어리라는 말이 청각 장애인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며 "한두 명씩이라도 이 말을 쓰지 않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표현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으로 알려진 원씨의 캠페인에 1000여명이 후원자로 나섰고 2000만원이 넘는 돈이 모였다. 그는 이 돈으로 엄지장갑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원씨는 지난해 말 한 외국계 기업의 사회공헌팀에 취업했다. 그는 "정부에서 받았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취업한 덕분에 지난달 처음으로 끊겼다"며 "이제 경제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돼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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