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2.16 09:30 | 수정 : 2017.02.16 09:52

    [책册 vs 상像]

    • 글/구성 : 뉴스콘텐츠팀 이수진

    열일곱 여고생을 보는 예순아홉 시인의 '갈망'… '은교'



    "너희 젊음이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벌이 아니다"

    70대의 노인은 어느 날, 집 앞 마당 흔들의자에 '놓여져' 있던 열일곱 소녀의 모습에 문득 깨어난 '갈망'을 이렇게 변명한다. '내 늙음은 벌이 아니다'라고.

    늙음이 벌이 아닌 것은 맞지만, 한 노시인이 가진 뒤늦은 '갈망'의 결말에는 상이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파국에 가까웠다. 이적요 시인은 죽음 이전에 남긴 노트에 파국의 기승전결을 담담히 서술한다. '갈망'의 추함과 아름다움, 그 양면성을 온전히 드러내며.

    영화로서 관객에게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흰옷을 입고 무방비 상태로 흔들의자에 앉아 잠이 든 은교의 모습이다. 적요했던 시인의 마음을 한순간 뒤흔들어버린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만큼 책에서도 이 장면은 매우 인상적으로 서술돼 있다.


    #1. 은교의 첫인상


    #2. 거울 앞의 이적요

    햇살과 함께 있는 은교는 눈이 부실 지경이다. 예뻐서라기 보다 젊어서 그렇다. 어둠이 짙은 곳에서 적요는 거울 앞에 맨몸으로 섰다. 예순 아홉의 이적요는 거울에 비친 초췌한 나체를 가만히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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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리창을 닦는 은교

    유리창을 닦는 은교의 모습은 유난히 하얬다. 젊음을 수식하는 말이 아무리 다양하게 있다한들 '눈부시다'라는 말을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 같다. 피부가 하얀 은교는 한층 더 눈부셨다. 은교는, 집 안 어둠 속으로 점점 침전하는 이적요에게 남향의 따뜻한 빛을 쪼여주고 싶었을까. 은교가 가장 좋아하는 청소는 유리창 닦기라고 책에 쓰였다.


    #4. 은교의 거울을 구해주는 이적요

    영화 '은교'의 마지막 씬에서 은교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울먹인다. "거울이 다 똑 같은 거울인 줄 아는 공대생이 뭘 알아!". 서지우는 은교의 거울을 공장에서 나오는 수백개의 거울 중 하나라고 생각했고 이적요는 은교의 거울을 엄마가 선물로 준 단 한 개의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서지우는 별이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십년이 걸린 사람이었다.


    #5. 이적요의 가슴에 헤나를 그리는 은교

    유리창을 닦는 은교의 모습은 유난히 하얬다. 젊음을 수식하는 말이 아무리 다양하게 있다한들 '눈부시다'라는 말을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 같다. 피부가 하얀 은교는 한층 더 눈부셨다. 은교는, 집 안 어둠 속으로 점점 침전하는 이적요에게 남향의 따뜻한 빛을 쪼여주고 싶었을까. 은교가 가장 좋아하는 청소는 유리창 닦기라고 책에 쓰였다.

    갖지 못하는 것을 죽도록 '갈망'하다

    박범신 작가는 소설 '은교'를 불과 한달 반 만에 써냈다며. '갈망'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고백했다.

    '은교'가 갖는 이야기는 노구에게 뒤늦게 찾아온 주책맞은 욕정을 '갈망'이는 단어로 포장한 것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나 '갈망'은 있으며 그것을 솔직하며 가감 없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낸 '혁신'의 이야기인가.

    '은교'라는 이 위험한 이야기는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불거진 박범신 작가의 '성추행' 논란을 대하고 보니 '은교'의 줄타기는 더욱 아찔해 보인다. 결국 선택은 또 독자의 몫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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