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변호사]③ 법률시장 개방...설자리 잃어가는 국내 대형로펌

조선비즈
  • 최순웅 기자
    입력 2017.02.15 15:56 | 수정 2017.02.16 10:41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법률시장이 개방된 2012년 국내에 진출한 ‘클리어리 가틀립 스틴 앤 해밀턴’(Cleary Gottlieb Steen & Hamilton) 한국 사무소는 2015년 매출 100억원을 넘겼다. 인사혁신처가 2016년 12월 발표한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로펌 명단에 미국계 로펌으론 클리어리가 이름을 처음으로 올렸다. 인사혁신처는 공직자윤리법상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로펌에 고위 퇴직공직자가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전년도 매출을 기준으로 명단을 공개한다.

    지난 1월 기준 법무부에 등록된 미국 로펌은 22개다. 특히 최근들어선 대형 로펌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로펌 레이섬 앤 왓킨스(Latham & Watkins)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 법률전문지 아메리칸 로이어(The American Lawyer)에 따르면 레이섬 앤 왓킨스의 매출액(2015년 기준)은 26억5000만달러(약 3조원)를 기록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매출액(6억8680만달러)의 4배 수준이다.

    국내 대평 로펌의 한 대표변호사는 “국내 로펌에 대한 자문 의뢰가 줄어든 것은 경제상황 탓도 있지만 국내외 로펌간 경쟁이 치열한 것도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레이섬 앤 왓킨스 CI
    ◆ 미국 로펌 사무소 급성장

    국내 로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분야는 인수합병(M&A)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분야(아웃바운드)는 물론 해외 기업이 국내에 진출하는 분야(인바운드)도 국내 로펌의 위상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예컨대 법률시장 개방 전인 2007년 두산인프라코어는 미국 밥켓을 인수할 때 국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 하지만 법률시장이 개방된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 로펌보다 해외 네트워크가 많은 미국 로펌을 고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미국 로펌인 폴 헤이스팅스가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의 하만인터내셔널 인수를 자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폴 헤이스팅스는 미국 본사 글로벌 M&A 부문의 대표인 칼 산체스(Carl Sanchez) 파트너 변호사와 서울사무소 기업자문 부문의 수장인 김새진 파트너 변호사, 서울사무소의 김동철, 김우재 파트너 변호사 등 20여명을 투입했다.

    서울 사무소는 삼성과 미국 폴 헤이스팅스 본사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한 대형로펌의 M&A 전문 변호사는 “국내 로펌도 삼성전자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삼성전자는 국내 로펌을 배제하고 폴 헤이스팅스 국내 사무소에만 자문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폴 헤이스팅스 김종한 서울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폴 헤이스팅스의 한국 사무소와 본사가 협력해 복잡한 미국 상장사 인수 계약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며 “미국 상장사 인수에 관심이 있는 국내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깃발과 폴헤이스팅스 CI
    ◆ 3월 15일부터 3단계 법률시장 개방…국내 로펌 “경쟁 치열+인력 유출 가능성" 고민

    3월 15일부터는 미국 로펌이 한국 로펌과 합작사를 만들어 국내 소송과 자문에도 참여할 수 있다. 한미 FTA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 3단계 중 마지막 단계가 실시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시각은 엇갈린다. 미국 로펌들은 지난해 2월 법 개정을 통해 외국 로펌의 합작 법무법인 지분율과 의결권이 최대 49%로 제한됐기 때문에 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법인을 만들 유인이 없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미국 로펌 한국 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지분율 49% 제한 등으로 합작법인이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미국 로펌의 한국 사무소는 합작법인을 통한 국내 사건보다 지금처럼 국내 기업이 미국에서 하는 소송과 미국 기업을 인수하는 자문 등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 로펌의 시각은 다르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변호사는 “3차 법률시장 개방이 이뤄지면 미국 로펌이 합작법인을 통해 한국 변호사(한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변호사)도 고용할 수 있어 국내 기업의 한국내 자문을 놓고 미국 로펌과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른 대형 로펌의 파트너변호사는 “아직 미국 로펌 사무소들은 미국에서 직접 직원을 파견하고 있지만, 3차 법률시장 개방이 되면 미국 변호사 자격과 한국 변호사 자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인력들이 빠져나갈 수 있어 고민이다”라고 털어놨다.

    ◆ 국내 로펌 새로운 시도…“중형 로펌에겐 기회”

    국내 로펌들은 ‘미국 현지 법에는 약하다’는 평판을 깨기 위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등 틈새 시장을 노리는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해 5월 국제법연구소를 세웠다. 김앤장은 연구소장으로 권오곤(사법연수원 9기) 전 유고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을 영입했다. 권 소장은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뒤 2001년부터 10여년간 ICTY에서 상임재판관과 부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한국과 국제 사법 체계를 모두 이해하는 국제법 전문가라고 평가받는다.

    법무법인 화우는 지난해 8월 미국의 디스커버리(Discovery, 증거개시제도)에 대응할 수 있는 디스커버리 센터를 설립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기 전 당사자들이 서로 가진 증거와 서류를 확보하는 제도다. 화우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소송하면 가장 먼저 당황하는 제도가 디스커버리”라며 “미국에서 소송을 당해도 국내 로펌이 대응할 수 있도록 센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화우는 또 기업에 사전 점검 컴플라이언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컴플라이언스는 통상 ‘준법 감시'라는 뜻으로 내부 통제를 통해 위법 사항을 미리 점검하는 것을 말한다. 화우 김재영 파트너변호사는 “미국 로펌과 협업하는 모델을 찾고 있다”며 “국내 대기업에게 국내 로펌에 대한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합작법인을 통해 도약을 시도하는 로펌도 있다. 한 중형 로펌 파트너변호사는 “비밀리에 합작법인 추진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형 로펌은 규모가 커 미국 로펌들이 합작법인을 만드는 데 부담스러워 하지만 중형 로펌에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 중형 로펌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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