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빨갱이? 독재정권?… '민주주의' 갈증, 스크린에서 풀다

사회 비판적인 영화가 스크린 트렌드의 일부가 됐다.
특히, 올해는 1980년대 민주화 시절을 다룬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오현영

    입력 : 2017.02.17 08:33

    지난해부터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온 나라를 흔들어 온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역사를 배우고 잊지 않으려는 관객들의 선택을 받는 요즘, 개봉했거나 개봉 예정인 영화들을 통해서 그 시절 그 사건을 되짚어봤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개봉 1995년 11월 18일
    감독 박광수
    출연 문성근(김영수), 홍경인(전태일), 김선재(정순)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삶을 그린 영화. 영화는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의 생애를 그리면서도 영웅적 투쟁이나 정치적 선동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당시 열악했던 노동 현장과 노동계 현실을 청년이 겪었던 절망으로 고발하고 있다. 먼지가 자욱했던 다락방 공장은 소녀 노동자들이 6개월 만에 폐결핵에 걸릴 만큼 탁하고 협소한 환경이었고, 감독은 그곳을 사실적인 세트와 폐쇄적인 영상구도로 그려냈다.

    이 영화는 국민 7,600여 명이 영화 전태일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영화제작을 위한 2억 5,000만 원을 마련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34회 대종상영화제 기획상을 받았고, 제32회 백상예술대상 3개 부문, 제16회 청룡영화상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

    1970년 11월 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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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전태일의 일기장 내용을 특종 보도한 11월 22일자 주간조선, 1970년 11월 13일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장례식에서 아들의 영정을 껴안고 오열하고 있다 /조선 DB

    1948년 8월 26일 대구의 한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로 태어난 전태일은 1954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어릴 때부터 동대문 시장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온 그는,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어린 소녀들이 일당 70원을 받으며 고된 노역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1968년, 노동법을 공부하고 평화시장 재단사들을 중심으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모임인 '바보회'를 창립, 1970년 9월 '삼동친목회'를 조직해 근로 개선 운동을 펼쳐나갔다. 10월 8일 동료들과 함께 평화시장(주) 관리사무실을 찾아가 사업주 대표들과 근로조건 개선, 노동조합 결성 지원 등을 협의했다. 이즈음 정부의 회유와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약속이 있었으나,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분개한 전태일과 삼동회 회원들은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火刑式)을 하기로 결의,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플래카드를 경찰에게 빼앗기고 시위가 무의미하게 끝나던 중, 당시 22세였던 전태일은 온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평화시장 앞을 달리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는 외마디 말을 남기고 쓰러진 뒤,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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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2005년 9월, 전태일 동상 개막식에서 이소선 여사가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다, 2011년 11월 6일 서울 청계6가 전태일다리에 향린교회에서 주최하는 전태일동지 41주기 거리추모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인원, 이태경 기자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은 한국 노동운동의 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건 이후, 1970년의 청계피복노동조합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만 전국에서 2,500여 개에 달하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모두가 전태일 분신자살 사건에 자극을 받아 출현했다.

    [사진으로 본 '건국 60년, 60대 사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운동의 불씨로
    [아듀 20세기] 전태일 분신자살

    영화 '꽃잎'

    개봉 1996년 4월 5일
    감독 장선우
    출연 이정현(소녀), 문성근(장), 이영란(엄마), 추상미(우리들), 설경구(우리들)

    영화 '꽃잎'은 당시까지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5·18 민주화운동을 영화적 소재로 한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영화에는 1980년 5월, 어머니를 따라 광주 시내의 시위대 대열에 동참했다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엄마의 손을 뿌리친 채 도망쳤고, 그날의 충격과 어머니를 버린 죄책감에 정신분열증에 걸린 소녀가 등장한다. 배우 겸 가수 이정현이 이 소녀역을 맡아 이 때의 비극을 신들린 연기로 보여주면서, 제3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과 제17회 청룡영화제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소설가 최윤의 데뷔작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가 원작이다.

    영화 '꽃잎' 5.18 다룬 ‘비극의 역사’
    [방콕영화제] 장선우 감독 `꽃잎' 최우수 극영화상 수상

    영화 '화려한 휴가' '26년'

    개봉 2007년 7월 25일
    감독 김지훈
    출연 김상경(강민우), 안성기(박흥수), 이요원(박신애), 이준기(강진우)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는 5·18 민주화운동을 전면에 다룬 영화다. 영화는 택시 운전기사, 간호사, 고교생 등 정치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평범한 시민들이 정권에 의해 비극은 맞는 이야기를 그리며 개봉 당시 전국 68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택시기사 민우와 고등학생 진우, 간호사 신애 등 광주의 평범한 시민들이 국가 폭력에 맞서 총을 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 제목은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작전명이기도 하다.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으로, 2007 대선 당시 범여권 주자들 사이에서 '화려한 휴가 보기' 붐이 일기도 했다.

    개봉 2012년 11월 29일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곽진배), 한혜진(심미진), 임슬옹(권정혁)

    영화 '26년'은 개봉 4년 전 촬영을 준비했지만, 돌연 투자가 철회되면서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었다.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제작 지연 탓에 '외압' 논란도 증폭됐다. 이 영화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자를 향해 유가족들이 복수를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제작에 난항을 겪었던 '26년'은 결국 시민 투자 등의 방식으로 4년 만에 촬영을 재개해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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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드라마 너도나도 '복수는 나의 것'…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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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운전사' '임을 위한 행진곡'

    개봉 2017년
    감독 장훈
    출연 송강호(만섭), 토마스 크레취만(피터), 유해진(황기사), 류준열(재식)

    1980년 당시 택시운전사가 5·18 민주화운동 취재에 나선 독일 기자를 우연히 태워, 광주로 가게 되면서 목격하는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송강호가 택시운전사 만섭 역을 맡고,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민주화운동을 직접 취재한 외신기자 역을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봉 2017년 5월
    감독 박기복
    출연 전수현(이철수), 김부선(명희)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그리고 1989년 5월, 호남과 영남에서 벌어진 두 역사적 사건의 시간과 공간의 결합을 이끌어 내며,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가치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국가폭력의 역사 속에서 불행했던 1980년 5월을 화해와 치유로 담은 가족 휴먼영화로 이후 세대인 희생자 딸의 시선으로 이루어졌다. 의문사한 아빠,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36년을 살아가는 엄마, 그리고 유복자로 태어나 국민 개그맨이 된 딸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 시민들의 스토리펀딩으로 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3년 전 정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지만, 3년 넘게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영화 관계자는 설명했다.

    5·18 민주화운동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해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 및 인권의 전환점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냉전 시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시민의 저항과 가해자 처벌, 보상에 관한 내용이 담긴 문서·출판물·사진 등의 기록물이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전두환이 이끄는 군 장교들이 시국을 정리한다는 명목하에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이듬해 5월, 이에 반발한 전국의 학생과 노동조합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5월 17일,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광주로 급파했으며, 다음 날인 5월 18일에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군인들에게 맞섰다. 이에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을 공격함에 따라 도시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5월 21일 군인들은 시위자들에게 발포했으며, 광주를 완전히 봉쇄해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립시켰다. 5월 27일 이른 아침, 탱크를 앞세운 대규모 진압군이 시내로 진입해 신속하게 시위를 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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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1980년 5월 20일, 5·18 민주화운동 사흘째날의 긴장감 도는 금남로. 진압군과 학생 시민들이 도로를 가득메우고 대치하고 있다, (가운데) 5·18 민주화운동 중 다시 금남로에 진주한 계엄군이 시위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을 세워놓고 손을 묶고 있다, (오른쪽) 많은 사상자를 낸 5·18 민주화운동에 의해 계엄군은 시 외곽으로 물러났다. 전남도청앞 광장의 분수대 주변에 희생자들의 시신이 널려있고 시민과 학생들이 그 곁에 모여 민주화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조선 DB

    민주화 운동 10일 동안 광주와 주변 지역에서 시민 165명이 사망하고, 76명이 실종되었으며, 3,383명이 다치고 1,476명이 체포됐다. 또한 102명은 포위 공격 때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생존자들은 그때의 경험으로 신체적·정서적 외상에 시달렸다.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은 운동 직전에 체포되었다가, 후에 선동죄로 기소되었다. 김대중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형 집행이 취소됐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국가의 공식 명칭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지는 흐름에 따라 몇 차례 바뀌었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광주사태'로, 노태우 정부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김영삼 정부에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그리고 김대중 정부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되었다. 사건의 명칭에서 '광주' 이름을 배제한 것은 5·18 민주화운동이 지역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시민의 참여 속에서 이루어진 민주화운동이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영화 '변호인'

    개봉 2013년 12월 18일
    감독 양우석
    출연 송강호(송우석), 김영애(최순애), 오달수(박동호), 곽도원(차동영), 임시완(진우)

    '부림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에서 전국구 변호사로의 진출을 앞두고 있던 변호사 송우석은 국밥집 아줌마의 아들 진우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치소 면회만이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 독재 정권이 위력을 떨치고 있던 시절, 국가보안법 위반 공안 사범이 돼 있는 만신창이의 진우를 보고 우석은 그 사건의 변호를 맡는다.

    주인공 송우석의 모델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변호인'은 한국영화로는 9번째로 1,0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남겼고, 외화 '아바타'를 포함하면 10번째 기록이다. 2014년에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변호인' 靑龍 4관왕 품다

    부림(釜林)사건

    제5공화국 초기였던 1981년 9월, 부산 지역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 교사, 회사원 등 22명이 영장 없이 체포돼 물고문 등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며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받았던 사건.

    1981년 9월 제5공화국 당시 공안 당국이 부산에서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당시 불온서적으로 규정되었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역사란 무엇인가' 등 이적표현물 학습을 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 불법 감금하고 협박 및 잔혹하게 고문하여 기소한 부산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조작사건이다. 같은 해 7월 서울지역 운동권 학생 등이 학림다방에서 첫 모임을 가진 이후 무더기로 구속된 용공조작사건인 '학림(學林)사건'에 이어 부산에서 사건이 터지자, '부산의 학림(學林)사건’이라는 뜻에서 '부림사건'이라 이름 붙여졌다.

    당시 체포된 22명 중 19명이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6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당시 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광일, 이흥록, 이돈명 변호사 등과 함께 변론을 맡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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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부산고등학교 정문 앞에 자리 잡은 시위대를 향해 연설하는 노무현 변호사. 사진 우측 트럭 위에는 '동구' 국회의원 선거 우편투표함을 보호하는 경찰들이 있고, 학교 정문 앞에는 시위대를 둘러싼 전투경찰들의 모습이 보인다. /노무현 재단, (오른쪽) 2014년 2월 13일 '부림사건'의 재심 청구인 5명(오른쪽부터 고호석, 최준영, 설동일, 이진걸, 노재열)이 33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3일 오전 부림사건 재심이 열린 부산지법에서 청구인 5명이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정 앞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남강호 기자

    한편 2009년 8월 14일 부림사건 재심 공판에서 법원은 7명의 재심청구인에 대해 계엄포고령 및 집시법 혐의에 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등에 대해서는 기존 판결을 고수했다. 이후 부림사건 당시 수괴로 지목되어 6년형을 선고받고 2년 반의 수감생활 끝에 1983년 성탄절 특사로 풀려난 고호석 씨 등 5명은 2012년 8월 2차로 재심을 신청했고, 법원은 2013년 3월 유죄로 인정된 부분에 대한 재심 개시를 밝혔다. 그리고 2014년 2월 13일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는 2월 13일 부림사건의 유죄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한 고호석, 최준영, 설동일, 이진걸, 노재열 씨 등 5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2014년 9월 25일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모두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釜林사건, 국보법 위반 혐의 33년 만에 無罪
    [김창균 칼럼] 釜林 사건의 두 가지 얼굴
    일베 여러분, 영화 '변호인' 한 번 보시죠?
    "사실을 비틀고 미화"… 釜林사건 판·검사, 영화 '변호인'을 반박하다

    영화 '남영동 1985'

    개봉 2012년 11월 22일
    감독 정지영
    출연 박원상(김종태), 이경영(이두한)

    군부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1985년 9월 4일, 남영동 대공분실(對共分室)이 배경인 영화다. 이곳은 경찰 공안 수사당국이 '빨갱이'를 축출해낸다는 명목으로 소위 '공사'를 하던 고문실로, 여기서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된 김근태가 고문당했던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 인물 김종태는 '장의사'라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에 의해 온갖 고문을 받으며 거짓 진술서를 강요받는다.

    김근태 고문 사건

    1985년 9월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약칭 '민청련')의 의장이었던
    김근태가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 심각한 고문을 당한 사건.

    김근태는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며, 대학시절 시위에 참여해 가까스로 복학했지만, 1971년 또다시 서울대생 국가내란음모사건에 휘말려 유신정권이 막을 내릴 때까지 도피 생활을 했다. 1983년 민청련 초대 의장에 올랐으며, 1985년 8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됐다.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경찰서에서 구류를 살다가, 당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여기서 이근안에게 1985년 9월 4일부터 20일까지 22일 동안 전기고문 등을 당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이후 김근태는,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 15대 총선부터 서울 도봉갑 지역구에서 세 차례 당선됐다. 2000년 8월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이 되면서 당 지도부에 올랐고,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 17대 총선에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함께 양대 계파를 형성했다. 김근태는 평생을 어눌한 말투와 부자연스러운 몸짓 등 고문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2007년부터 손발을 떨고 몸이 굳어지는 파킨슨병을 앓아왔으며,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도 시달렸다. 2011년 11월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2차 합병증이 겹치면서 패혈증으로 한 달 만인 2011년 12월 30일 6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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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종철군이 고문을 받다 숨진 갈월동 대공분실 조사실 내부. 박군은 욕조의 물에 머리를 담그는 고문을 당했으며 의자 맞은편에 조사관 책상이 있다, (가운데) 200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열사 20주기 추모식 및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선포식이 열리고 있다, (오른쪽) 영화 '남영동 1985'의 실제 인물 고 김근태 의원 /조선 DB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치안본부(지금의 경찰청)가 간첩 수사를 명분으로 만들었다.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으며,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이곳에서는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됐다. 취조실의 구조 자체가 24시간 내내 피의자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고, 기본적인 인권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 2005년까지 보안분실로 사용되었다가, 경찰의 과거사 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경찰청 남영동 인권센터로 운영중이다.

    故 김근태 의원, 28년 만에 국보법 위반 혐의 무죄 판결 받아
    민주화 운동의 代父·신사 정치의 상징을 잃다
    '고문기술자' 만난 김근태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영화 '1987'

    (왼쪽부터) 영화 '1987'에 출연하는 배우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김태리 /조선 DB

    개봉 2018년
    감독 장준환
    출연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김태리

    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30주년을 맞아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놓고,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권력과 사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으로 부패한 군사정권의 민낯을 비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 경찰이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을 불법 체포해 고문하다 사망하게 한 사건.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전두환 정권의 탄압과 그에 대한 저항은 1980년대 중·후반에 더해가고 있었다. 경찰은 '민주화 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수배자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을 불법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박종철에게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했다.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다. 같은 달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발표했다.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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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1988년 2월 26일 서울대 제42회 졸업식서 졸업생 5백 명 한때 시위, (가운데) 1987년 1월 26일 밤,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박종철 군 추모및 인권회복을 위한 미사'기 끝난뒤 사제단, 수녀, 청년신자들이 시위를 벌이기 위해 성당 밖으로 나오고 있다. 고문추방 플래카드와 피켓, 박군의 영정을 든 이들은 명동성당 정문에서 경찰과 1시간 50분 동안 대치했다, (오른쪽) 경찰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고 박종철 군의 추모제를 1987년 1월 20일, 서울대 교정에서 가진 학생들이 교문 앞으로 행진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조선 DB

    그러나 부검의(剖檢醫)의 증언과 언론 보도 등으로 의혹이 제기되자, 사건 발생 5일 만인 19일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등 2명이 구속됐다. 1987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 신부는 박종철 고문치사와 관련된 경찰의 은폐 조작을 폭로했다. 치안 본부 5차장 박처원 등 대공 간부 3명이 이 사건을 축소 조작했고, 고문가담 경관이 2명이 아니라 5명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안기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 비서실 및 이들 기관의 기관장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은폐 조작에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종철 고문치사와 은폐 조작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었고, 정권 규탄 시위를 촉발했다. 이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 민주화 추진위원회 사건: 1985년 10월 29일 검찰이 서울대학교 학생운동의 비공개 조직인 민주화추진위원회를 이적단체로 규정해 관련자 26명을 구속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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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항쟁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 발표 후, 그해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민족항쟁이자 민주화운동.

    전두환 정권의 집권 이후, 계속된 민주화 운동은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을 포함한 민주체제 요구로 이어졌으나, 정권은 이를 강경하게 탄압했다.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지며, 거리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1987년 4월 13일, 전두환은 개헌논의 중지와 제5공화국 헌법에 의한 정부 이양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사회 각계 인사들의 비난 성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해 5월 27일 재야 세력과 통일민주당이 연대하여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민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이후 국민운동본부는 항쟁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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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1987년 6월 18일, 서울도심시위 시위대에 방석모와 방독면 뺏기는 전경들, (가운데) 1987년 6월 18일, 시위대가 전경에게 뺏은 장비가 불타고 있다, (오른쪽) 1천여 명의 시위대가 몰려와 신세계백화점 앞에 있던 경찰을 밀어낸 후, 도로에서 돌을 찾는 등 시위 준비를 하고있다. /조선 DB

    한편, 그해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공식성명을 통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은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의 분노는 전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에 국민운동본부는 6월 10일 '박종철 군 고문살인 조작·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국민대회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주요 도시에서 약 24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시위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산발적인 야간시위와 철야농성으로 이어지면서, 지속적 투쟁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6월 24일 전두환과 김영삼의 여야 영수회담이 결렬되자, 6월 26일 국민운동본부는 '국민평화대행진'을 강행했는데, 이로써 6월 항쟁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전국에서 130여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전국적으로 경찰서 2개소, 파출소 29개소, 민정당 지구당사 4개소 등이 파괴 또는 방화되었으며 3,467명이 연행되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다.

    [아듀 20세기] 87년 6월 항쟁… 6·29선언의 결정적 계기

    ■ 내용 참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18 기념재단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한국영화 1001 /이세기(마로니에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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