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걸린 서양화? 반야심경 270자 새긴 佛畵

    입력 : 2017.02.10 03:04

    [광주 무각사의 대변신]

    1972년 상무대 軍법당으로 출발, 2007년 청학 스님 주지 부임 후
    10년간 외출 않고 3000일 기도… 카페·갤러리… 지역사회 봉사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 21세기형 도심 사찰로 거듭나

    8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무각사(無覺寺). 설법전의 조명을 켜자 가로 8m, 세로 2.5m짜리 대형 벽화가 나타났다. 무심히 보면 알록달록한 현대 서양화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오른쪽 위 부처님 그림 아래로부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이란 한자가 보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죽 읽어가니 반야심경 270자가 모두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는 사리자(舍利子)와 관음·지장·문수·보현 보살과 사천왕의 얼굴도 있다. 광주의 대표적 원로 서양화가인 황영성(76)씨가 1년여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작품이다. 설법전 옆 지장전엔 임종로 작가가 수월관음(水月觀音) 등을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린 작품들이 설치된다. 중세 고딕 가톨릭 성당의 대표 미술 양식이 21세기 도심 사찰의 '불화(佛畵)'로 거듭난 실험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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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도’ 앞에 선 청학(왼쪽) 스님과 황영성 화백. 작품을 자세히 보면 작은 네모 칸마다 그려진 반야심경 270자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무수히 의견을 나누며 작품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오는 24일 청학 스님의 3000일 기도 회향에 맞춰 점안식을 갖는다. 일반 상설 공개는 내년쯤 건물 준공 후 이뤄질 예정이다. /김영근 기자
    무각사는 지금 환골탈태 중이다. 시작은 2007년 청학(淸鶴·64)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다. 무각사는 1972년 송광사 방장 구산(九山) 스님의 발원으로 상무대 군법당으로 문을 열었다. 1994년 상무대가 전남 장성으로 이전하면서 이 지역은 광주의 새 도심이 됐고, 5·18기념공원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사찰은 시멘트 골조에 서까래와 대들보는 목조로 올린 법당이 비가 샐 지경으로 퇴락해가던 중이었다. 스님은 2007년 8월 13일 부임한 그날부터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새벽 4시, 오전 10시, 오후 6시 하루 세 차례 1시간 30분씩 108배 하고 목탁 치며 금강경을 독송했다. 휴대전화는 벽장에 집어넣었고, 절 밖 발걸음을 끊었다.

    청학 스님은 1976년 향봉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에서 출가했다. 절집안 촌수로 효봉 스님은 큰아버지, 구산·법정 스님은 사촌 형님들이다. 출가 후 향봉·구산·법정 스님을 시봉했던 그는 파리 길상사를 열었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 초대 주지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을 지냈다. '이 시대에 맞는 불교'를 고민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도 냈다. 그가 무각사 부임 후 1000일 기도를 시작한 건 은사의 생전 당부 때문이다. "소임을 맡게 되면 최소 석 달은 기도하라."

    무각사 지장전에 설치될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의 일부. 16년간 이탈리아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해온 임종로 작가의 작품이다.
    무각사 지장전에 설치될 스테인드글라스 ‘수월관음도’의 일부. 16년간 이탈리아에서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해온 임종로 작가의 작품이다. /무각사
    기도하는 틈틈이 일거리를 찾았다. 창고 건물을 개조해 북카페와 갤러리를 만들었다. '사랑채'라는 이름의 찻집도 만들었다. 천주교·개신교·원불교와 함께 매주 토요일 절 마당에서 '보물섬'이란 재활용장터를 열었다. 겨울이면 소록도에 김장김치 5톤과 동지팥죽을 보냈다. 사찰 식당에선 노숙인·독거노인들에게도 신도들과 똑같은 점심을 대접했다. 매주 1차례 강의하는 1년 과정 불교대학을 열고 법당은 24시간 개방했다. 1000일 기도 중 외출은 단 두 번. 2010년 법정 스님 입적 사흘 전 병원을 찾았을 때와 법정 스님의 장례 때였다. 그때도 하루 기도를 마치고 저녁에 다녀왔다. 기도 시간을 지키다 보니 스님들과의 교류는 점차 줄었다. 대신 신도와 절을 찾는 시민이 늘었다. 신도들은 절로 신심(信心)을 냈고 '나누는 불사(佛事)'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불사'에 나섰다.

    2010년 5월 1000일 기도를 마칠 때 주변에서는 그가 기도를 끝낼 줄 알았다. 그런데 닷새 쉬고 다시 두 번째 1000일 기도에 들어 2013년 2월 '2000일 기도'를 마쳤다. 곧이어 세 번째 1000일 기도를 시작했다. 다만 '2000일'까지와는 달리 '100일 기도 후 열흘 휴식'으로 바꿨다. 체력 때문이다. 그 사이 목탁 3개가 깨져나갔고, 가사와 장삼이 해어져 꿰맨 횟수도 헤아리기 어렵다.

    '3000일 기도'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건물 짓는 불사에 눈을 돌렸다. 2014년 낡은 법당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반지하 700여평, 지상 120평 공사를 시작했다. 반지하 700평엔 지장전과 설법전, 선방(禪房) 등을 설치한다. 내년엔 지상에 목조로 대웅보전을 올려 완공할 계획이다. 반지하 700평은 '이 시대의 문화재'로 만들 생각이다. 황영성 화백의 현대식 탱화와 임종로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 불화를 설치하는 것도 "옛 사찰들은 당대 그 지역 최고 작가들의 작품으로 장엄했다"는 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청학 스님은 "이 모든 것은 신도 대중의 힘으로 가능했다"고 했다. "기도를 시작할 때 '목탁 치며 죽을 듯이 살아보자' 마음먹었습니다. 혼자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년간 단 한 번도 혼자 기도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신도분들이 함께했지요. 불사 역시 크게 기부하는 분 없이 모두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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